2001년 조지 W 부시정부가 출범한 후 4개월의 재검토 끝에 발표한 대북정책은 북한 핵 문제를 대화로 푼다는 미 외교정책의 골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을 보는 시각이나 북한 핵 위협의 제거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론에서 부시 정부는 철저히 클린턴 정부의 색채를 지우는 'ABC'(Anything But Clinton)의 길을 택했다.북미 양자대화의 결과로 이뤄진 1994년 제네바 핵 합의는 그들에게 핵으로 미국과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악의 축'북한에 뇌물(경수로·중유)을 보장한 문서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제네바 핵 합의는 핵 동결만을 강제함으로써 북한이 원하면 언제든지 약속을 파기, 핵을 다시 손에 넣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는 게 부시 정부의 기본 생각이다.
대신 부시 대통령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법의 폐기'(CVID)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북한에 어떤 보상도 줄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또 양자 대화로는 북한의 약속이행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지역의 당사국들이 참여하는 6자회담을 핵 문제 해결의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
만일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의원이 11월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을 이긴다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일정부분 클린턴 시대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ABC가 ABB(Anything But Bush)로 다시 치환되는 셈이다.
케리 의원도 집권할 경우 부시 정부가 문서 보관서에 처박아둔 '페리 보고서'를 다시 끄집어내 북한 핵 협상의 로드맵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9일 민주당 후보 토론회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과거 민주당 정부가 추진했던 대화 방식으로 즉각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화 방식은 곧 북미간의 직접 협상이다. 그는 "부시 정부가 북한과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지 않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말해 부시 정부의 대화방식이 북한 핵 위기 상황을 키우고 있다는 인식의 일단을 내비쳤다. 때문에 북한이 백악관의 주인이 케리 후보로 바꾸기를 희망하며 시간 벌기를 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르몽드지는 2일 "이 같은 기대는 최근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한이 보인 형세 관망주의를 설명해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케리 후보를 북한이 호락호락하게 보면 오산일 것이라고 말한다. 대화 방식에 대한 반(反) 부시적 견해가 북한 핵의 용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