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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알로에 인생 김정문 <29> 원예사업 20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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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알로에 인생 김정문 <29> 원예사업 20여년

입력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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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물 아홉 때부터 꽃·나무와 함께 생활했다. 1957년 원예와 인연을 맺은 뒤 알로에를 만난 75년 봄까지 꽃 농장을 했다. 알로에 사업 초기엔 자금난을 겪을 때마다 꽃 장사로 생계를 잇기도 했다. 꽃 농사와 장사를 합하면 20년이 넘는다. 알로에는 빼고 말이다.강산이 두 번 바뀐 세월이니 사연도 참 많았다. 허나 그 시절 돈은 벌지 못했다. 건강이 악화해 병원과 약값으로 날린 탓도 있고 이재에 둔한 까닭도 있다.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한 열정만은 차고 넘쳤다. 국화 억제재배와 글라디올러스 촉성재배에 국내 최초로 성공한 건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사업 환경은 열악했다. 산업화 물결이 넘실댄 70년대 이후에도 꽃 시장은 좁았다. 반면 원예업자는 늘어만 갔다. 꽃 값은 형편없었고 수지 맞추기에 급급했다.

나는 원예 사업의 돌파구를 신기술에서 찾았다. 수경재배와 생화 냉장법 등이 그것이다. 수경재배란 물과 자갈을 콘크리트 평면조에 넣고 그 속에서 기르는 방법이다. 당시로선 생산성 높은 신 재배법으로 통했다. 생화 냉장은 꽃꽂이용 생화를 냉장해 두었다가 가격이 좋을 때 출하하는 걸 말한다.

수경재배와 식물 조직배양 등은 이미 선진국에서 성공한 상태였다. 그러나 생화 냉장은 나 스스로 창안해냈다. 성공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예컨대 카네이션은 3,4월 대량 생산돼 가격이 폭락한다. 그러나 5월 어버이날이 되면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이다.

나는 실험에 몰두했다. 위장병과 관절염 등이 무지막지하게 괴롭히던 73년 봄쯤이다. 지금 생각해도 원시적인 방법이었지만 원리는 비슷했다. 나는 맨땅에 굴을 판 뒤 얼음을 쏟아 붓고 국화와 카네이션 등을 길렀다. 영상 1도 정도를 유지하자 꽃은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얼음에서 꺼내기만 하면 이내 시들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외부 온도에 적응기를 거쳐야 하는데 갑자기 영상 15도에 노출되자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나는 1년 가량 실험에 매달리다 포기했다. 몸마저 최악의 상태로 치닫던 때였다. 건강이 허락했다면 원예사에 일 획을 그을 만한 실험에서 성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0여년이 지나 손꼽히는 원예업자 한 분을 만났더니 "김 선생의 개척정신은 우리 원예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특히 생화 냉장은 기발한 발상이자 경악할 만한 실험이었다. 그 시도는 지금 미국에서 성공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란 존재를 잊지 않은 게 고마웠다.

꽃 농사를 짓는 동안 각종 농약을 사용했다. 처음엔 호리돌이란 살충제가 인기였다. 그러더니 이사디 파라티온 마라티온 등 더 독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땅과 환경에 관심을 갖고 이들 약에 관해 공부해보니 후회 막심했다. 그때 내가 뿌린 약들로 땅과 작물에 커다란 죄를 지었음을 깨달았다.

특히 파라티온은 유래마저 기막히다. 2차 대전 때 독일과 연합군 모두 엄청난 양을 비축했는데 워낙 무서운 가스라 전쟁에선 써 먹지 못했다. 이를 마시면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나오고 마침내 죽게 된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자 농약으로 팔았고 전세계에 살충제로 퍼져 나갔다. 제대로 희석하지 않고 치다가 죽은 농부가 몇이며, 얼마나 많은 가축이 희생됐겠는가. 바람 부는 날 농부가 이 약을 치다 소가 뜯던 풀에까지 퍼져 소가 죽어가는 모습을 내 눈으로 생생히 목격하기도 했다. 그 뿐 아니다. 꽃의 종자를 소독하는 약은 유기수은제다. 수은이 얼마나 무서운 중금속인가.

한번은 토양 살균제인 클로르 피크린을 사러 농약방에 갔다가 건어물 업자들이 드럼째 사가는 걸 본 적도 있다. 그 약을 희석해서 황태에 친다고 했다. 그러면 파리가 달려들지 않고 빛깔 좋게 말릴 수 있다. 그것이 고스란히 사람 몸으로 들어가 평생 빠져나가지 않고 이병 저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인간들이 땅과 생명체를 파괴하는 만행을 그칠 날은 언제일까.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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