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에 휴학원을 냈다. 휴학 사유란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라고 적었지만 핑계였다. 딱히 휴학을 하고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사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요즘 신문을 펼치면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졸업식'에 관한 기사가 줄을 잇고 있어서 읽기가 겁난다. 졸업을 앞둔 나에게는 웃고 넘길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알아주는 대학에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한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설 때 새벽의 찬 공기가 좋았고 어둑해진 캠퍼스 도서관을 나서면서 나만의 성취감에 젖기도 했다. 외국인을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활한다면 졸업하고 나서 사회가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착각임을 깨닫게 됐다. 지방대에 다니고 있고 인문학 전공자인데다가 여학생….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나와 상황이 비슷한 여자 선배 가운데 취직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고 나의 개성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져 줄 회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에 나는 절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대학 생활 동안 이루어 놓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학생이 졸업 후 일자리를 찾기까지 평균 3년이 걸린다고 한다. 명문대 출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눈이 높아서 그렇겠지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가는 곳마다 몇 백대 일의 경쟁률이 흔하고 높은 학력이 오히려 장애가 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버지는 "네가 취직하는 길은 공무원 시험밖에 없다"며 공무원이 되라고 하신다. 성 차별이 없고 능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솔깃해진다. 기업은 지방대생에게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현실로 인정하고 학벌을 요구하지 않는 공무원 시험이나 국가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기까지 하다.
젊음이란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는 황금기다. 그렇지만 이 땅의 젊은이들은 황금기를 좌절 속에서 보내고 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은 성격이 다르다. 지방대 출신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소망한다.
이 수 연 호남대 역사문화학과 4학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