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에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물갈이 요구는 역대 어느 때 보다 높다. 각 당의 후보 공천 과정에서도 현역 의원들이 줄줄이 탈락하고 정치 신인들이 약진하는 등 세대교체의 바람이 거세다. 이번 총선이 '현역의 무덤'이 될 것이란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인지도 위주 투표 성향과 높은 지역주의 벽 때문에 '찻잔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반론도 적잖다.정치권 물갈이는 이미 공천과정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현역 의원이 45명에 달한다. 소속 의원의 3분의 1이 공천 과정에서 물갈이 된 셈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도 경선에서 현역이 신인에게 고배를 마시는 등 현역의 10∼20%가 중도 하차했다. 우리당 총선기획단 간부는 "공천 신청자의 절반이 40대이며 최종 공천 후보의 50∼60%가 40,50대"라고 말했다. "현역 이외에 60대 공천자는 찾아보기가 힘들고 70대는 천연기념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역에 대한 저조한 지지율은 이 같은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다. 1월말 본보 여론조사에서 현역 의원을 찍겠다는 응답은 14%에 불과했다.
최고조에 달한 세대교체의 파도는 각종 비리사건으로 인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감과 구태 정치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됐다. 여권의 분열도 공천수요가 커졌다는 점에서 정치신인에겐 유리한 여건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현역 물갈이 비율이 60%대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울대 한상진 교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정치 쇄신의 욕구가 강렬해 젊은 층이 투표에 참여한다면 물갈이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섣부른 세대교체 기대는 금물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찮다. 정치신인들이 지역주의와 현역 프리미엄의 벽을 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는 현역에 거부감을 보이지만 실제 투표성향은 다르다는 것이다. 총선시민연대 김기식 집행위원장은 "물갈이 욕구가 강하지만 세대교체가 이뤄질 지는 불투명하며 지역구도 완화 여부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지역발전에만 관심을 갖는 유권자 성향과 인물 위주의 투표 관행도 신인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정치신인들은 "지역에 가서 중앙 정치 얘기를 하면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결국 세대교체와 정치신인의 성공 여부는 단순한 명분이나 바람 보다는 개개인의 역량과 투표 참여도, 지역주의 부활 여부에 달려있다는 지적이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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