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존 그리샴의 소설은 '대중'이란 이름이 앞에 붙으며 무게감을 상실한다. 하지만 존 그리샴의 소설만큼 영화에 어울리는 소설도 흔치 않다. 지적 스릴러로서 독자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며 동시에 박진감도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의 소설가답다.
'런어웨이'의 원제는 '런어웨이 주어리'(Runaway Jury). 직역하면 사라진 배심원이라는 뜻이지만, '결정적인 배심원'이라는 뜻이 더 정확하다. 원제처럼 이 영화는 미국 사법제도의 근간인 배심원 제도 속의 깊은 곳으로 관객을 유인한다.
총기난사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이 무기회사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자, 회사는 배심원들의 속내를 꿰뚫고 전략을 세우는 '배심원 컨설턴트' 랜킨 피츠(진 해크먼)를 고용한다. 변호사 웬델 로(더스틴 호프먼) 역시 회사를 위해 변론하지만, 승리의 관건을 쥔 사람은 아무래도 피츠다. 배심원들을 어떻게 조종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츠는 배심원 내부에서 뭔가 심상찮은 기운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결국 배심원 중 하나인 이스터(존 큐색)가 뭔가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스터의 여자 친구인 말리(레이철 와이즈)는 로와 피츠에게 동시에 접근해, 1,000만 달러만 주면 소송을 유리하게 진행시켜 주겠다는 제의를 한다.
오랜 지기인 더스틴 호프먼과 진 해크먼이 경쟁자로 나와 화장실 설전장면을 연출하는 등 영화는 묵직한 배우들의 진중한 연기로 법정 드라마의 실체를 보여준다. 때문에 액션 영화적 묘미는 없지만, 법정 스릴러로서의 묘미는 빠뜨리지 않는다. 물론 미국식 정의에 대한 지독한 우월주의는 어쩔 수 없지만, 그건 존 그리샴 영화라면 당연히 치러야 할 판권료 같은 것. 감독 게리 플래더. 15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야망의 함정
하버드대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미치(톰 크루즈)는 조그만 법률회사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입사한다. 그런데 영 이상하다. 회사를 살아서 떠난 동료가 없다는 소문도 들리고, 회사가 마피아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제보도 접수된다. 직속상관 애버리(진 해크먼)는 회사에 드리워진 거대한 음모를 눈치 챈 신출내기 변호사를 압박해온다. 미치의 무기라고는 젊은 변호사로서 전문지식과 용기뿐….
웬만한 영화 팬들은 여기까지만 봐도 단번에 누구의 원작인지 알 수 있다. 옴짝달싹 못하는,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얼른 포기하고 싶은 위기상황을 주인공의 비상한 능력으로 풀어나가는 법정 스릴러물의 대가 존 그리샴이다. ‘야망의 함정(The Firm)’은 시드니 폴락 감독이 그리샴의 출세작 ‘더 펌’을 1993년에 영화로 만든 작품. 미국 남부 도시 멤피스를 배경으로 두 주인공 변호사의 두뇌싸움을 꽤나 숨막히게 그렸다.
전작 ‘어 퓨 굿맨’에 이어 또다시 변호사로 나온 톰 크루즈와, 그의 적수격인 고참 변호사 진 해크먼도 이름값을 해냈다. 이후 영화로 만들어진 그리샴 원작의 ‘의뢰인’이나 ‘펠리칸 브리프’보다 구성력과 긴장도는 떨어지지만, 미국식 법과 정의에 관한 영화적 음모론을 보는 재미는 역시 숨길 수 없다. 18세 관람가.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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