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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클럽&마니아-'돌하우스'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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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클럽&마니아-'돌하우스' 만드는 사람들

입력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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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가 겹겹이 달린 분홍 드레스, 한껏 부풀린 머리를 휘날리며 반짝이는 유리구두를 뽐내는 인형. 잠잘 때나 밥 먹을 때나 늘 곁을 지켜주던 단짝 인형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 행복한 시간은 여자만의 특권이다. 따스한 봄바람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3월, 어린 시절로 추억의 나들이를 떠나보자.경기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에 있는 ‘돌 하우스(doll house) 공방(www.dollhouse.or.kr)’은 말 그대로 인형의 집을 만드는 꿈의 공장이다. 나무 합판에 톱질을 해서 큰 틀을 만들고 아기자기한 가구와 소품을 넣어 집을 꾸민 후 그 안에 소망을 담아 완성하는 돌 하우스. 언뜻 보면 장난감 같지만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미 예술로 인정받는 분야다.

정해진 틀 없이 꾸미는 나만의 공간

3월 초의 나른한 오후. 15평 남짓한 작은 공방에서는 왁자한 웃음과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잡지에서 챙겨 놓은 건데 음식 만들 때 참고하면 좋겠어요.”

“요구르트 통을 잘라서 꽃무늬 천을 덧씌워서 예쁜 전등갓 만들었어요.”

“빨대에 아크릴 칠을 해서 스탠드를 세우기만 하면 돼. 그런데 전구도 낄 수 있을까?”

유리 문을 열고 들어선 세상은 동화 속에 나오는 장난감 공장 그대로다. 어린 시절 꿈에서 보았음 직한 아기자기한 색상의 작은 집 수십 개가 방 안에 가득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의 손끝에서는 끊임없이 예쁜 인형 소품이 만들어진다.

낡은 ‘꽃가라’ 블라우스를 찢어 벽지를 바르고, 점토를 빚어 피자 세트를 만들고, 얇은 나무를 잘라 화장대를 제작하고…. 정해진 순서나 교과서가 없어 작업이 더욱 재미있다. 이전에 배워둔 각종 기술도 예쁜 집을 꾸미는 데 동원된다. 십자수로 벽에 걸 액자를, 퀼트로는 침대 커버를 만들고 직접 제작한 푹신한 ‘테디 베어’도 소파에 앉힌다.

집의 한 변이 아무리 길어도 50㎝를 넘지 않으니 소품 사이즈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도 되지 않는 초소형이다. 작다 보니 정성과 품이 더 들어 집 하나를 만드는데 빨라도 한 달, 길면 두 달씩 걸린다.

새로 지은 예쁜 집에 샘솟는 희망

제부도에서 매주 두 번씩 돌 하우스 공방을 찾는다는 이정희(62)씨. 애견카페를 운영하는 그녀는 25년동안 세계 각국의 미니어처(miniature)를 모아 전시해왔는데 지난해 4월 카페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애지중지하던 미니어처를 모두 태워버렸다. 안타까움과 홧병으로 끙끙대던 그녀에게 다시 기쁨을 찾아준 것이 바로 돌 하우스다. 첫 작품 제목도 그래서 ‘애견 카페’다.

“전에는 돈 주고 샀는데 이제는 내가 직접 만드니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평생 모은 것을 태워버린 후 분하고 억울해 잠을 못 잤는데, 인형 집을 만들고부터는 아주 신이 나. 또 전에는 관절이 아파 고생했는데 집중해서 작품을 만들다 보니 어느새 몸도 안 아파. 작은 재료를 만지다 보니 인내심도 생기는 것 같아. 며느리를 들이면 꼭 같이 할거야.”

그녀의 이야기에 공방에 웃음이 돈다. 옆에서 듣던 대학생 김지민(19)양이 거든다.“남편께서 매번 데려다 주신대요. 배우던 거 집에 가지고 가면 옆에서 같이 톱질도 해주시고‘밥은 내가 할 테니 열심히 만들라’고 격려해 주신다고 자랑이 대단하세요.”예쁜 집을 만들려 모여서일까. 오가는 대화에도 풋풋한 정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예쁜 집의 주인공은 바로 나

이 공방의 주인은 김효정(39) 김정미(35) 자매. 1990년대 초 일본 유학 중에 돌 하우스를 처음 접하고 ‘예술’을 배워온 정미씨가 회원들을 가르치고 효정씨는 홈페이지 운영 등을 책임진다.

“섬유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워낙 인형을 좋아했어요. 일본 유학 시절 붐을 타던 돌 하우스를 한번 보고 홀딱 반했죠. 돌 하우스계의 1인자인 혼자와 토시오씨에게 배웠지만 한국에서 공방을 차릴 생각은 차마 못하고 혼자만의 취미로 삼았죠. 그러다 재작년 말 재료 공동구매 등을 위해 개설한 카페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5개월 전 공방을 차렸습니다.”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진행되는 강의를 들으러 찾아오는 회원은 40여명. 하지만 인터넷으로 배우고 정보를 공유하는 이들은 이미 500명을 넘어섰다. 언니 효정씨는 돌하우스의 가장 큰 매력을 ‘상상력을 키우는 힘’이라고 말한다. 집을 설계하고 안을 채워넣는 모든 과정이 만드는 이의 머리에서 이뤄진다.

“돌하우스에 왜 인형을 넣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사이즈가 맞는 인형이 있으면 넣어도 되지만 원래는 없는 것이 맞습니다. 내 맘대로 꾸민, 아름다운 공간의 주인공은 바로 내가 돼야 하거든요. 솔직히 인형 집처럼 꾸미고 사는 분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복잡한 현실을 떠나 잠시라도 그 공간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참 행복해져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집집마다 재미난 사연이 가득하다. ‘신혼방’이란 제목이 붙은 집에는 포장지가 널려 있는데 신혼여행 다녀온 후 결혼식 때 받은 선물을 하나씩 펼쳐보는 설정이란다. 또 다른 집은 어쩐지 어수선하게 어질러져 있다. “이건 동생이 만든 건데요, 욕실에서 세수하다가 너무 반가운 사람이 찾아와서 급하게 뛰어나간 모습이래요. 보세요, 물을 안 잠가서 마구 흘러 내리죠?”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박수 소리가 들린다. 주부 효진(32)씨가 두 달 동안 공들여 작업한 ‘샌드위치 하우스’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여러분, 축하해주세요.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제가 샌드위치 하나씩 돌릴게요. 대신 이거 ‘디카’로 좀 찍어주세요. 호호.”

또 하나의 꿈의 공간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그 안에는 또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사연이 스며 있을까.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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