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사람이더군요. '창살없는 감옥'같았던 7년간 항상 생각한 것은 내 뼈를 묻을 곳은 패션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고향에 온 기분입니다."디자이너 하용수(54)씨가 패션계로 돌아온다. 1998년 자신이 운영하던 의류업체 베이직이 부도나면서 사실상 패션계를 떠난 지 7년만이다. 이번 복귀는 진브랜드 닉스가 지난 16일자로 하씨를 고문겸 총괄 아트디렉터로 임명하면서 이루어졌다.
하씨는 패션계에서는 풍운아로 불린다. 약관 20세에 동아제약 '박카스'의 초대 광고모델로 이름을 날렸고 영화 '별들의 고향'을 통해 연예계에도 입문했다. 여주인공 경아의 첫 남자역이었다.
또 발군의 패션감각으로 70,80년대를 풍미한 남대문 패션몰 '페인트타운'을기획해 선풍을 일으켰고 명동의 '빌리지'와 동대문 '비상구' 기획료로 백지수표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하이패션 브랜드 '파라오'와 '베이직 하용수'는 재벌가 여인들의 총애를 받았으며 최민수 이정재 지수원 등을 키워내 스타제조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던가. '미다스의 손'을자처하는 보스 기질은 오만함으로 비판당했으며 미소년들인 모델 혹은 연예인 지망생들을 끌고다니는 것도 구설에 올랐다. 98년 어느날 아침, 가장 믿었던 후배가 모든 사업자금을 빼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옷장속의 옷들과 자신도 모르게 산더미처럼 쌓인 부채뿐이었다. 도망치듯 미국으로 갔다가 99년 어머니의 임종에 가까워서야 귀국했다.
"LA에 있을 때 점쟁이한테 갔는데 이러데요. '겉은 사나이인데 안에서는 아이가 울고있네'.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3형제 중 장남을 유난히 아꼈던 어머니가 죽어가는데 귀국도 못하는 심정을 어떻게 그렇게 꼬집는지. 울면서 결심했죠. 가자, 가서 부딛치자."
귀국 후 하루가 멀다하고 경찰과 검찰에 불려다니며 조사를 받았다. 빨리 재기하고 싶은 욕심에 '하용수'라는 이름값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용도 많이 당했다. '벨벳'이나 '아이다' 등 유명 바와 레스토랑 기획을 맡아 돈은 벌었지만 한푼도 만져보지 못했다. 그대로 채무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7년을 버틴 지금 대부분의 부채를 해결했다.
"가진 것을 몽땅 잃었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것을 얻었죠. 한마디로 방자하게 살았는데 이제 삶에 겸손해지고 더 진지해졌다고 할까요."
닉스의 브랜드 혁신에 대한 하씨의 각오는 남다르다. 닉스는 90년대 후반 국산 진브랜드로는 유일하게 해외 유명브랜드를 제압하며 청바지를 패션아이템으로 끌어올린 주역. 그러나 닉스 신화는 태승어패럴에서 보성, 다시 닉스로 주인이 바뀌는 동안 그야말로 전설로만 남았다. 하씨는 그 전설을 부활시키는 것이 첫번째 소명이라고 말한다.
"닉스를 성공적으로 부활시키면 그 다음엔 오랜 소망이었던 오뜨쿠틔르 작업도 해야지요. 그리고 환갑에는 내가 직접 디제잉하는 환갑파티도 갖고싶어요. 알거지 신세이지만 패션과 음악,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한 저는 재미있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이번엔 정말 돈벼락 좀 한번 맞아봤으면, 하하."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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