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 글자 보여요?" "목소리가 잘 안 들려요. 선생님, 좀더 크게 말씀해 주세요."4일 오전 경기 안양시 동안구 안양시청 6층 제2회의실. 시 공무원들의 회의장소인 이곳은 이날 갈 곳을 잃은 고교 신입생들의 '콩나물 교실'로 돌변했다. 교육환경 미비 등을 이유로 안양 충훈고 배정을 거부한 학생들을 위한 임시수업이 시작됐지만 수업분위기는 영 잡히지 않았다.
'시청 수업'에 나온 학생은 등록을 거부한 225명중 204명. 오전 9시부터 학부모 한 명과 인근 사설학원 강사를 교사로 초빙해 3시간동안 국어와 수학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120평 정도의 회의실에는 작은 마이크 한 개와 화이트 보드 한 개만이 설치돼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학생들은 교과서조차 받지 못해 유인물과 볼펜 한 자루로 수업을 들었고, 책상이 없어 라디에이터와 회의용 탁자에 걸터앉은 학생도 눈에 띄었다.
정오께,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학부모들이 준비해온 컵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때운뒤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청을 나섰다. 전날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의 '거리 입학식'에 이어 '시청 수업'으로 고교생으로서 첫 발을 내디딘 학생들. 이들은 5일부터는 또 학교 대신 인근의 한 사설 학원으로 내몰려 수업을 받게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도교육청은 미등록 학생들의 학부모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이날도 '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일단 충훈고에 등록하라'며 큰소리만 쳤다.
"친구들은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는데…. 우리 현실은 너무 슬퍼요." 한 학생이 던진 외마디에는 암담하고 참담한 우리교육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 농축돼 있었다.
이왕구 사회2부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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