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이 4일 중앙선관위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선거법 위반 판정을 계기로 '대통령 탄핵'을 본격 거론하고 나서 정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불법선거문제를 탄핵으로 연결지은 것은 민주당이다. 조순형 대표는 이날 "노 대통령이 선관위 결정에도 불구하고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하는 상황에서 국회가 탄핵이나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도 "당 법률구조단이 검토한 결과, 이번 발언은 수많은 위법행위 가운데 구우일모(九牛一毛)"라면서 "법리적으로 탄핵사유가 충분하다"고 동조했다.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이날 밤과 5일 오전 의원총회를 열어 탄핵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야당은 마음만 먹으면 탄핵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다. 한나라당(146석)과 민주당(62석) 의석을 합치면 208석으로 탄핵안 가결 요건인 재적의원(271명) 3분의 2(181석)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런 힘을 갖고 있는 양당이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궁지에 몰려 있기 때문에 탄핵이 현실화할 지 모른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해 당 지지율이 몇 달째 밀리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분당 이후 새 좌표설정에 실패한 민주당이나 국면타개를 위한 특단의 카드가 필요한 처지다.
따라서 극단적 선택을 불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선관위 결정에 대해 뻣뻣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대응도 야권의 전의(戰意)에 기름을 붓고 있다.
그러나 야권 내부에서도 "탄핵안이 실제로 발의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론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각종 비리와 정쟁의 본산으로 낙인 찍힌 채 저물어가는 16대 국회가 헌정중단 사태를 초래할 탄핵을 밀어붙이는 데 대한 거부감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탄핵이 총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추진된다는 점에서 순수성이 의심 받을 소지도 다분하다.
이런 여건에서 탄핵을 강행하면 오히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입지만 강화시키는 역작용을 부를 것이라는 게 야당 지도부의 우려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공히 탄핵추진에 앞서 노 대통령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단계적 접근방식을 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현 단계에서 야당의 노림 수는 실제 탄핵 보다는 대통령의 위법을 총선정국의 핵심 이슈로 부각시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야당의 향후 공방에서 탄핵을 촉발하는 돌발상황이 벌어질 개연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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