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가 기업 구조조정과 '차이나 효과(China Effect)' 등 양 날개 모멘텀을 달고 21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구가하며, '버블 붕괴' 이후 그 어느 때 보다 강한 대세상승 기대감을 키워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해마다 닛케이지수(평균주가)의 발목을 잡아왔던 금융권의 이른바 '3월 대란'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히려 구조조정을 거친 은행주가 지수 상승을 견인하며 일본 경제의 성공적 부활을 낙관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의 '3월 징크스'가 사라질 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최근 경기 회복세가 또 한 번의 일본 경제 도약으로 이어질 지 주목하고 있다.일본 기업 구조조정의 키워드도 금융권이다. 일본 증시는 그동안 은행 결산기인 매년 3월이면 결산 때 부실채권 처리 문제와 직결된 금융권의 '3월 대란' 우려로 만성적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은행주가 강세장을 이끌며 증시의 지속적 상승 기대에 군불을 때고 있다.
지난달 20일 시가총액 1조1,240억엔(106억달러) 규모의 신세이은행(옛 일본장기신용은행) 상장 성공이 촉매가 됐다. 일본 사상 처음으로 부실에 따른 퇴출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재상장된 신세이은행은 상장 첫날 거래에서 공모가 보다 58% 급등하며 부실과 동의어가 되다시피한 일본 금융권에 대한 우려를 일거에 해소했다.
이는 신세이은행에 대한 4조엔의 공적자금 투입, 외국계 컨소시엄에 대한 경영권 매각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올 회계연도 상반기(2003년 3∼9월)에만 전년 동기 대비 29%의 순이익 급증세를 기록한 데 대해 투자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와 관련, "신세이은행의 성공적인 데뷔는 투자자들이 부실 대출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던 은행에 대해 다시 신뢰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며 "투자자들은 13년간 침체됐던 UFJ홀딩스,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 미쓰비시도쿄파이낸셜그룹 등 대형은행들의 회복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 들어서만 154억달러라는 기록적인 자금을 일본 증시에 투하하며 장세를 이끌고 있는 외국인 역시 일본 은행의 부활에 '판돈'을 걸고 있다. 닛케이225지수가 1만1,361.51엔을 기록, 지난해 6월 이후 종가기준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2일에도 외국인 '사자'에 힘입어 UFJ홀딩스와 미쓰비시도쿄파이낸셜그룹은 전날 대비 각각 2.8%, 2.9% 상승하는 강세를 이어갔다. 한마디로 일본의 기업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은행주 강세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일본 증시의 강세는 금융 구조조정 외에 실물경기의 강력한 회복세가 뒷받침한 것이기도 하다. 실물경기 회복이 기업 수익성을 높였고, 이에 따른 기업 상환 능력 제고가 은행 신뢰도를 높이는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선순환의 중심에는 '차이나효과'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 증시의 최근 급등세에 불을 붙인 최대의 호재는 지난해 4·4분기 성장률. 지난달 18일 발표된 수치는 블룸버그통신이 이코노미스트 설문조사를 통해 예상한 4.7%를 훨씬 뛰어넘는 연 7%에 달했다. 4분기 연속 성장세를 이어간 이 같은 결과는 90년 '버블붕괴'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로 일본경제가 10년 장기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고 있다는 가장 뚜렷한 조짐으로 해석됐다.
특히 수출과 설비투자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수출은 해당 기간 엔화 가치가 4.2%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전분기에 비해 4.2% 증가했다. 또 수출 급증과 증시 랠리로 기업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설비투자도 5.1% 치솟았다.
실물경기의 이 같은 회복세는 미국 등 선진국 경제의 호전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대중국 수출 증가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지난해 대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43.6% 급증한 572억3,000만달러로 집계됐고, 중화권(중국 대만 홍콩)에 대한 전체 수출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대미 수출 규모를 넘어섰다.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원은 최근 일본 증시 강세에 대해 "지난해 원화 기준으로 83조7,429억원을 일본 증시에 투입한 외국인의 '바이 재팬(Buy Japan)' 추세는 한국 보다도 견조하다"며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의 디지털 컨버전스 기술력 등 향후 성장동력을 감안할 때 일본 증시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추세적 상승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인철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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