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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용남이 누나의 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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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용남이 누나의 칼점

입력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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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 때면 생각나는 어릴 때의 동네 누나가 있다. 지금처럼 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바로 이 때, 양지 밭에서 냉이를 캘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한동안 그 누나의 집 주식은 냉이콩국이었다. 그 국에 밥을 말아먹는 것이 아니라 냉이에 콩가루를 묻혀 끓인 콩국 자체가 주식인 것이다. 그러다 어느 한끼 보리쌀과 좁쌀 감자를 섞은 밥 한 숟가락을 그 국에 말아먹는다.그 누나가 나물을 하면서 "오늘은 밥을 먹나 죽(국)을 먹나, 밥이면 서고 죽이면 누워라, 후여." 하고 칼을 공중에 던져 점을 친다. 그 칼이 공중에서 거꾸로 내려와 땅에 바로 꽂히면 저녁엔 밥을 먹고 윷가락처럼 자빠지면 또 냉이콩국만 먹는다는 뜻이다.

그 누나뿐 아니라 아직 초등학교를 다니는 여자 애들이나 열일고여덟 살의 말만한 처녀들이 나물을 하다 말고 그렇게 공중으로 칼을 휙 던져 저녁에 무얼 먹을 것인지 칼점을 쳐볼 만큼 쌀이 귀했던 봄철의 얘기다. 이 얘기를 하자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고, 아내는 눈물지었다. 얼마 전 어머니로부터 그 누나가 잘 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 일처럼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그럴 때 왜 '고맙다'고 표현하는지도 그 누나를 통해 다시 알게 되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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