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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깨는 사람들]<1> "서울대 방폐장" 제안 주도 강창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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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깨는 사람들]<1> "서울대 방폐장" 제안 주도 강창순 교수

입력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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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이해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다양한 사회적 쟁점이 불거지고 있다. 인터넷을 비롯한 의사소통 수단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고정관념과 대중적 정서에 영합한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어떤 신선한 발상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기반성을 게을리하면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억압이 된다. 또한 진실은 회의하는 정신에서 출발해 과학적 검증을 거쳐 확인된다.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에 경종을 울리는 지식인들의 눈을 통해 자칫 중우(衆愚)로 흐르기 쉬운 대량의사소통 시대의 균형 잡힌 인식의 틀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약 력

1943년 경북 청송, 61세 서울대 공대 원자력 공학과 졸업 미국 MIT 핵공학 박사 미국 유나이티드 엔지니어스&컨스트럭터스 핵에너지 총괄부장 대우엔지니어링 설계본부장 서울대 교수 한국원자력학회장 국제원자력 안전위원회(IAEA INSAG) 위원

저서 '원자력공학 개론' '현대산업사회와 에너지' 등

#1. 2월14일 실시된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원전센터) 건립에 대한 주민투표에서 전북 부안군 주민들은 91%가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이 투표는 법적 효력은 없지만 주민의 압도적 반대 의사가 확인됨으로써 부안 원전센터 건립은 사실상 최종 불가 판정을 받았다. 보상 문제에 대한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충분한 주민 여론 수렴을 거치지 않는 등 절차상의 문제도 컸지만 방사능 안전에 대한 불안이 넓게 퍼져 있었다.

#2. 1월8일 서울대 교수 63명이 관악산 지하공동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검토하자고 정운찬(鄭雲燦) 총장에게 건의했다. 국제원자력 안전위원회(IAEA INSAG) 위원인 강창순(姜昌淳·원자력공학) 교수, 최근 세계 최초로 복제된 인간 배아(胚芽)에서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한 황우석(黃禹錫·수의학) 교수, 오연천(吳然天) 행정대학원장 등이 앞장섰다. 4일 만인 1월12일 정 총장은 학교차원에서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제안을 주도한 강창순 교수는 대학 당국과 주변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제안을 거부한 데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전공 학자로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의 안전성을 장담하면서 주민 불안을 자극하는 환경단체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관악산 방폐장 유치 건의 과정을 설명해 주십시오.

"아주 우연히 이뤄졌습니다. 황·오 교수와 교수식당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부안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러다가는 국책사업이 전반적으로 표류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였지요.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데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 가장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곳이 서울이고, 서울대 사람들은 어쨌든 이 사회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니 서울대가 앞장서서 나라를 위해 학교 안에라도 두자고 총장께 얘기해 보자.' 오 교수의 제안으로 다른 교수들의 서명을 받았는데 반나절 사이에 63명이 됐습니다."

―지질 검토도 하지 않고 어떻게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까.

"그 동안 주로 거론된 임해지역이 아닌, 내륙의 인구밀집지역이란 점에서 처음에는 저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제가 없었습니다. 동굴 처분 방식을 택한다면 관악산의 지하 암반은 조건이 좋습니다. 지하 공동이 있으니 지하수 침투 문제도 검증된 셈이고요. 듣기로는 지질도 강한 암반이라고 하더군요.

지질학을 전공하는 분들이 지질 검토 필요성을 들어 회의적 반응을 보였는데 당연합니다. 저희는 검토를 제안했을 뿐입니다. 예비 지역으로 선정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지질학적 조사, 경관을 해치거나 국립공원 지역에 포함되는지 등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조사, 문화재 존재 여부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주변 환경에 미칠 생태학적 조사에 들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활성단층이 나온다거나, 환경에 미칠 영향이 크다거나 하는 문제점이 발견되면 사업은 중단됩니다.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지요."

―결국 제안 자체가 묵살되고 말았는데….

"보도가 나가자 관악구를 비롯한 주변 자치단체가 무조건 반대의사를 밝히고 나왔습니다. 환경론자들의 반발도 잇따랐고요. 학교로 항의가 빗발쳐 정 총장이 '일이 안 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대학본부측은 시끄러운 건 싫다는 태도였습니다. 우선 안전성 검토를 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슬금슬금 없던 얘기로 돼 버렸지요."

―방사성 폐기물이란 어떤 것입니까.

"크게 보아 고준위 폐기물과 저준위 폐기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저준위 폐기물을 다시 중·저준위 폐기물로 나눕니다. 고준위 폐기물은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데 방사능이 강하고 반감기도 수만∼수십만 년에 이릅니다. 우리나라는 재처리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어서 사용후 핵연료가 그대로 쌓이고 있지요. 중·저준위 폐기물은 원전 운용·보수 과정에서 나오는데 장갑이나 보호장비, 원자로 냉각수 폐필터, 증류기 농축액 등입니다. 의료용이나 산업용, 연구개발용 방사성 동위원소 폐기물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사용후 핵연료와 중·저준위 폐기물은 지금까지 원전 부지내 시설에 저장해 왔는데 2008년쯤이면 넘칩니다. 당장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면 모를까 원전 운용을 한다면 새로운 저장 시설이 필요하고, 그 예비 후보지로서 부안군 위도가 검토된 것입니다."

―방사선 보건학 강의도 하고 계신데 방사선은 인체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대량의 방사선은 즉각적 영향을 미칩니다. 전신 피폭선량이 50렘(rem) 정도면 혈액검사로 피폭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100렘 정도면 약한 구토, 300렘 정도면 심한 구토와 빈혈 증세를 보입니다. 500렘을 넘으면 거의 죽습니다.

폭선량이 50렘 미만일 때의 영향은 확률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DNA 변형의 대표적 인자인 산소를 예로 들어 보지요. 하루 100억 개 정도의 산소가 들어오면 1억 개 정도는 DNA 근처로 간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인체가 만드는 항산화제가 이를 100분의 1, 효소가 손상된 DNA를 다시 100분의 1로 줄입니다. 그래도 산소에 의해 1만개 정도의 DNA가 손상되는데 손상된 DNA를 폐기시키는 기능이 있어 하루에 1개 정도 DNA 변형이 일어납니다.

이런 기능 덕분에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소량의 방사선에 의한 만성적 영향은 암 발생 확률로나 얘기할 수 있습니다. 현재 1렘에 0.0004명, 즉 1만명이 1렘을 피폭하면 4명이 발암할 확률이 있다고 봅니다. 이는 원폭 투하 등 대규모 방사선 피폭 자료에서 환산해 내려온 수치입니다. 아스피린을 한꺼번에 100알 먹으면 죽지만 하루 한 알씩 먹어도 별 영향이 없듯 피폭선량도 그 영향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방사선에 대해서는 그런 출발점을 따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요."

―방폐장 주변의 방사능 오염이나 방사선 피폭 가능성이 자주 거론되는데….

"방사능 물질의 누출에 의한 오염 가능성은 무시해도 좋습니다. 포장·보존 기술이 충분히 확보돼 있습니다. 방사선 피폭 가능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받는 방사선은 세계 평균으로 연간 0.24렘입니다. 주로 우라늄 계열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대부분인데 우라늄은 물이나 음식물, 돌 등 어디에나 들어 있습니다. 우라늄이 많이 포함된 돌로 지은 집에 사는 사람은 피폭선량이 많다고 봐야지요. 원전을 설계할 때 목표치는 연간 0.001렘, 제한치는 0.1렘입니다. 방폐장은 0.001렘을 설계 기준으로 잡고 있습니다."

―부안군 주민들에게는 그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나요.

"국책사업은 크게 보아 이해당사자가 넷입니다. 방폐장의 경우는 중앙정부 소관부처(산자부), 사업자(한국수력원자력수원), 지방자치단체, 지역 주민 등입니다. 우선 네 당사자가 마주 앉아 사업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런 대화의 장이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사업의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화의 장이 열리지 못하도록 하는 조직적 반대운동이 이뤄졌습니다.

안전성 검토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활성단층이 있다느니, 주변 해역의 방사능 오염이 우려된다느니 등의 주장이 주민 불안을 자극한 것이지요. 이런 주장을 조직적으로 펴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세력이 문제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모르지만 나라를 위한 게 아님은 분명합니다. 자체 영향력 확대 등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겠지요.

법제상의 문제도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세 가지 악법이 있습니다. 지역보상과 공모유치, 주민투표 관련법인데 이대로라면 앞으로 국책사업은 못 합니다. 정부가 개입해서 좋은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점점 나쁜 방향으로만 가고 있습니다."

강 교수는 20일 하와이에서 열리는 국제학술회의에 발제자로 참석한다. 세계적 학자 약 600명이 참석할 이 회의에서 그는 방폐장에 대한 국민수용성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한다. "우리나라 방사성 폐기물 문제는 나쁜 사례로서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거든요."

황영식 편집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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