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상원의원이 미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부시―케리 양자 대결 국면이 형성됐다. 민주당 공식후보 지명은 7월 전당대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앞으로의 경선이나 전당대회는 후보 추인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2일 슈퍼화요일 경선 직후 조지 W케리 의원에게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걸려온 축하 전화는 곧 공화당과 민주당간 대선전의 막이 올랐음을 알리는 신호이다.케리 후보는 당내 경선을 치르면서 비교적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사정이 다르다. 공화당의 무자비한 공격과 언론의 철저한 검증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케리 의원이 개인적 자질이나 정책에서 허점을 보일 때 부시 대통령을 최고 두 자리 수 차로 제치고 있는 현재의 가상 대결 여론조사 결과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현재 1억5,0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한 부시 대통령은 5일부터 TV 광고전을 본격적으로 전개, 케리 의원의 인기 저지를 위한 반격에 나설 예정이다.
미국의 언론들은 부시와 케리의 대결도 2000년 부시와 고어 전처럼 '50 대 50'의 팽팽한 접전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0년 대선 때 대법원 판결로 백악관을 부시에게 내줬다고 생각하는 '성난 민주당원'들이 똘똘 뭉쳐 반(反) 부시를 외치는 것만큼이나 부시에게 맹목적 애착을 갖는 공화당원들의 견제심리도 강하다는 게 선거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플로리다를 비롯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일리노이, 위스콘신, 웨스트 버지니아, 뉴햄프셔, 아이오아 등 지난 대선 때 공화―민주당이 접전을 벌였던 주들에서 각 당원 들의 투표 참여율과 무당파의 표심이 당락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케리 후보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 반 부시 정서를 타고 대세를 거머쥐었지만 무당파의 많은 표는 존에드워즈 의원이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에게 쏠린 것으로 나타나 반 부시 성향을 가진 무당파를 완전하게 흡입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 선거전문가들은 선거운동이 후반에 접어들수록 이라크 문제 등 안보 문제와 함께 경제, 사회적 문제가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시 대통령으로서의 부시 대통령의 강점은 이라크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과 케리 의원의 베트남전 참전 경력 등으로 상쇄될 여지가 높다.
이에 따라 케리 의원은 국제적 반목을 낳은 부시의 외교정책과 함께 일자리 문제, 감세정책 등을 집중 부각하며 부시 정부의 실정을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케리 의원을 동부 엘리트 출신의 진보주의자로 몰아세우면서 의정 표결 성향의 문제점을 파고 들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 케리는 누구
존 F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은 1984년 매사추세츠에서 당선된 뒤 내리 4선을 한 워싱턴 정가의 중진이다. 그가 상원의원으로서 입지를 굳힌 것은 91년 베트남전 미군 실종자 및 전쟁포로 실태에 관한 상원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였다.
베트남 참전용사에서 정치인으로
케리 의원은 예일대 졸업 후 해군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 메콩 수로를 지키는 초계정 정장으로 근무하며 은성무공훈장 동성무공훈장 등 수 차례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그는 해군 대위로 제대한 뒤 반전운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71년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 출석한 그는 미국의 베트남 정책을 맹렬히 비판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91년 걸프전 참전에 반대한 것도 그의 베트남 참전과 뿌리가 닿아있다.
2002년 10월 의회의 이라크전 지지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그가 일관되게 반전운동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의외였다. 이 일로 케리 의원은 민주당 내 경선주자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흠을 찾기 힘든 모범적인' 의원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동네 아저씨처럼 수더분하고 친근한 인상이 매력이지만 이 때문에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나약하게 보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기성정치인의 색채가 강하다는 것도 그가 반대파들로부터 공격 받는 메뉴 중 하나이다.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20년 가까이 의원 생활을 하면서 워싱턴의 로비스트로부터 정치자금을 가장 많이 받은 상원의원"이라고 그를 공격하기도 했다.
부계는 체코에서 이주한 유대계 혈통
1943년 12월11일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난 케리 의원의 부계는 체코 오스트리아 유대혈통이며 모계는 출판 재벌 포브스 집안이다. 그의 중간 이름 F는 포브스(Forbes)에서 따왔다. 유대인 박해를 피해 체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할아버지 프란츠 콘은 이름을 프레데릭 케리로 개명하고 유대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아버지 리처드는 직업외교관이었으며 2000년 작고했다.
케리 의원의 아내인 테레사 하인즈 케리(65) 여사는 힐러리 클린턴에 비견된다. 자선사업가와 환경운동가로 활발히 일하는 테레사는 대체의학 등에 해박하며 남편의 정강정책과 선거운동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남편의 전립선암을 조기에 발견한 것도 그였다. 그러나 직설적이고 화끈한 그의 성격이 남편의 대선가도에 득이 될지 말이 무성하다. 테레사는 케첩 제조회사인 하인즈 가문의 존 하인즈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과 결혼해 아들 셋을 두었으나 91년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첫 부인과 이혼한 뒤 딸 둘을 키우던 케리 의원과는 96년 재혼했다. 죽은 남편에게서 5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아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아시아 문화에도 관심
외교안보 분야에서 의정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케리 의원은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상원 동아태 소위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반도 관련 각종 세미나와 간담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다.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보스턴에서 한국불교무술 심검도를 전파하는 김창식 총재와도 친분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레사 여사와 재혼하면서 얻은 세 아들 중 장남 존은 심검도 펜실베이니아 지부를 관리하는 간부이다. 이런 인연으로 케리는 한국 불교에도 관심이 많다.
2m에 가까운 거구인 그는 아이스하키 광이며 전자기타 연주와 할리 데이비슨 모터 사이클 운전 실력도 상당하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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