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왕궁리에서 백제의 화장실 유구가 발견되어 고고학 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각종 기생충 알들은 백제 사람들의 식생활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물이기도 하다. 금관 같이 '박물관 전시물'에 요긴하게 쓰이는 국보급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생활사 유적들도 당대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자료이다.'화장실 고고학'이 있다면 '쓰레기 고고학'도 성립된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는 곳곳에서 패총이 발견된다. 거기에는 선사인이 내다버린 조개껍데기만이 아니라 각종 생활용품도 섞여 있게 마련이다.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서울 청계천도 일종의 '쓰레기 고고학'범주로 볼 수도 있다. 조선시대, 더 나아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를 거치면서 의도적으로 혹은 실수로 내다버린 각종 생활용품들이 청계천 바닥에 쌓여 있다. 단순한 '쓰레기'로만 볼 수가 없는 것이 당대의 수리·토목기술 등이 총동원된 국가적 프로젝트로 수차에 걸쳐 집행된 역사적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청계천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은 매우 과감한 문화재 파괴를 주도하고 있다.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시민의 안전과 평안을 빌미로 적당히 덮어버리고 밀어붙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끝내 모전교 호안석축 48m를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문화재 파괴의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명박 시장은 복원 현장을 공장 건설 현장쯤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밀어붙이는' 기업인 출신답게 '서울시주식회사'에서 발주한 건설 현장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참으로 용감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의 임기 내에 복원을 마무리하여 공과를 인정받겠다는 의지가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끝내 시민단체들이 서울시장을 문화재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발하기로 하였단다. 법정에서 판결이 가려질 것이지만 한번 망가진 문화재는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다. 시장을 위시하여 청계천 복원을 추진하는 고급 공무원들 역시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문화재 파괴에 '실명제'를 도입하자. 밀어붙이기식 문화재 파괴를 주도하고 있는 시장 이하 담당 공무원들과 건축업자 등 책임자급 실무자들의 이름과 인적사항을 공개하자.
화장실의 회충알이나 조개더미조차도 역사 복원에 일조하거늘, 국가적 거대 프로젝트로 이루어진 청계천을 과격하게 파괴하는 만행에 대하여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주 강 현 한국민속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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