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우리 정부의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계획'이 관련 국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소지가 있는 불공정 무역 행위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또 하이닉스 채권단이 2002년말 결정한 여신 3조원 만기연장 등의 조치가 불법 보조금인지를 가리는 조사도 착수키로 하는 등 한국에 대한 통상압력을 강화하고 있다.3일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USTR은 이날 발표한 '2004년 통상정책(2004 Trade Policy Agenda)'보고서에서 "반도체, 통신, 자동차, 농산물 등의 분야에서 한국의 무역장벽이 여전하다"며 올해에도 강도 높은 개방압력을 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USTR은 그동안 문제를 삼지 않던 우리 정부의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계획'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규정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며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가 국제적 의무를 이행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또 지난해 57%에 달하는 고율 상계관세를 부과한 하이닉스에 대해서도 추가로 보조금이 지급됐는지를 조사키로 했다. USTR은 2002년말 결정된 하이닉스 채권단의 1조9,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 여신 3조원 만기연장 등이 지난해의 상계관세 결정에 포함되지 않아 조만간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상계관세 공세에 시달렸던 하이닉스 반도체가 올해 추가로 상계관세 판정을 받을 경우 경영 정상화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반도체 분쟁에서 패배했던 하이닉스는 미국 유진공장의 생산물량 확대와 판로 개척 등으로 관세 부담 비용을 전체 매출액의 1% 미만으로 줄였고 지난해 4분기 2,19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상황.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이 올해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만, 일본 등도 연쇄적으로 관세부과에 나설 가능성이 커 경영에 엄청난 압박요인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이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계획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가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성장동력 산업은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다. 자칫 미국과의 통상 마찰에 휘말릴 경우 산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TV, 차세대 반도체, 지능형 홈 네트워크 등 10대 성장동력 산업을 선정한 정부는 올해 안에 연구개발(R&D)과 인프라 구축 등에 2,000억원 정도를 투입하기 위해 세부 사업 안을 짜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계획은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발전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불공정 무역행위로 볼 수 없다"면서 "만약 미국이 문제를 삼을 경우 WTO 제소 등을 통해 적절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USTR은 이미 통상현안으로 떠오른 무선 인터넷 표준인 '위피(WIPI)와는 별도로 2.3㎓ 주파수 대역의 무선인터넷 이용방안과 위치기반서비스(LBS) 등 통신분야의 차세대 유망 사업분야에서도 미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한국 정부의 정책을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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