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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방은 어떤 모습인가?/안규철 "49개의 방"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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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방은 어떤 모습인가?/안규철 "49개의 방" 展

입력
200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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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미술을 하면서 계속해서 미술을 의심하는 병이 있다. 범람하는 이미지의 강력한 힘 앞에서 수공업적 이미지 생산자로서의 무력함을 느끼고, 자본과 경제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미술의 역할에 대해 회의한다. 이미지를 다루면서도, 실상을 가리고 왜곡하는 이미지의 수상쩍은 속성을 경계한다."이 말에서 안규철(49·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씨 작업의 큰 속성들을 짐작할 수 있다. 스스로 '보는 것을 절제하라'며 이미지의 허상을 경계하는 시각적 금욕주의, 자본주의적 이미지 생산이 아닌 수공업적 조형성의 추구, 그리고 왜곡된 삶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안씨가 '49개의 방'이라는 이름의 개인전을 로댕갤러리에서 5일부터 연다. 방(房)을 소재로 한 신작 설치작업 3점, 텍스트와 오브제를 결합시킨 이전 작업 등 8점의 작품으로 여는 5년만의 다섯번째 개인전이다.

세 개의 방 작업에서 작가의 관심을 알 수 있다. 첫번째 방 '바닥 없는 방'은 독신자 한 사람이 살 수 있을 듯한 최소한의 공간을 요즘의 전형적인 원룸 형태로 재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 방은 아랫도리가 없다. 방은 벽과 바닥이 없이 천장에 매달려서 흔들리고 있다. 바닥이 없는 삶이다. 어디서 그 잡종의 디자인들이 왔는지도 모르는 얄팍한 인테리어에 갇혀, 뿌리 박지 못하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미끄러지듯, 주인이 아닌 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다.

두번째 방 '흔들리지 않는 방'은 각목으로 모든 것을 단단하게 못질해 묶어둔 방이다. 콘크리트 벽도, 대리석 바닥도, 천장도 언제 무너질지 믿을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삶이 불안정한 만큼 의심은 깊어지고, 기를 쓰고 현재를 붙들어두려는 욕망은 더 커진다. 버텨보려고 더 촘촘하게 각목에 못질을 할수록 현실에 대한 위기감은 더 커진다. 그 위기감은 정지에 대한 욕망, 궁극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욕망이 된다.

세번째 방 '112개의 문이 있는 방'은 49개의 작은 공간들로 구획된 방이다. 작가는 112개의 문으로 4면을 모두 여닫을 수 있는 49개의 방을 만들었다. 닫혔어도 열려있는 공간이고 한 사람이 점유할 수 있지만 결코 소유할 수는 없는, 타인의 침입에 노출된 공간이다. 타인의 발자국 소리와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는 이 공간은 혼자가 된다는 것이 불가능한 현대인의 삶을 의미한다. 미로 같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간섭 당하며 파편화된 삶에 대한 은유이다. 작가에게 문은 입구이자 출구이며, 희망이자 허상이기도 하다. 관객은 불구가 된 이 방들과 접촉하면서 허상같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듯하다.

다른 작품들에서는 글쓰기와 드로잉을 통해 미술에 언어를 도입하려 한 작가의 세계를 알 수 있다. '그 남자의 가방'은 11점의 드로잉과 그에 상응하는 글, 그리고 가방이라는 소재를 통해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맡기고 간 가방에 관한 이야기를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묻는다. '상자 속으로 사라진 사람'에서 작가는 지시문에 따르기만 한다면 눈 앞에 놓인 작은 상자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가설을 제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상자와 드로잉)과 개념(글) 가운데 어느 것을 믿고 선택할 것인지 의문에 빠져들게 한다. 우화라는 문학적 방식으로 미술의 범주를 넓히려 한 작가의 1990년대 개념미술 작업이다. 전시는 4월 25일까지. (02)2259―7781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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