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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학벌주의 극복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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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학벌주의 극복이 우선

입력
200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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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의사와 고시합격자 사위를 맞으려면 키(열쇠) 3개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기본적인 혼수물품으로 아파트키와 자동차키, 사무실키는 마련해야 '1등 사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마담 뚜'들의 수첩에는 졸부들의 딸과 1등 사윗감 명단이 빼곡히 적혀있곤 했다. 꼭 이래서만은 아니지만 고시나 의사에 대한 열망은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출세를 보장하는 황금의 열쇠로 인식됐기 때문이었다. 로또복권이 따로 없었다.고시 합격자수가 크게 늘어나고 의사도 많이 배출돼 점차 희소가치가 줄어들면서 이런 경향이 옅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요즘도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결혼정보업체들은 여전히 판검사와 의사 등을 특별회원으로 분류해 배우자 선정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이른바 '서울대병'이란 것도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들이 기를 쓰고 서울대를 보내려는 이유가 뭐겠는가. 어쨌든 이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을 얻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대기업체 인사부에 근무하는 친구를 통해 신입사원 채용기준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 기업의 경우 출신학교가 대학성적과 어학성적 등 다른 전형기준에 비해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출신학교는 100점에서 50점까지 6단계로 나눠져 있는 데 서울대와 연·고대, 카이스트, 포항공대는 1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이 친구는 "아마 대부분의 기업들이 비슷한 기준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또다시 사교육비 경감대책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한 마디로 공교육을 강화해서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대학 입시를 내신위주로 한다거나 수능시험을 교과서나 EBS방송과외에서 출제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모처럼 국민들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그리 큰 기대를 하기가 어렵다.

가령 수능시험을 쉽게 낸다는 것인데 그럴 경우 수능점수 인플레에 따른 대입 전형의 혼란이 야기될 것이 뻔하다. 내신위주의 전형방식도 학교마다 내신 부풀리기로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서울대 등 명문대에 가고 싶어하는 학생은 많고 인원은 제한된 상황이라면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소용이 없다.

정부는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대입제도 개선안과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가장 시급한 과제인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망국적인 대학 서열화를 개선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서울대 폐교론이나 지방이전, 교명변경 등의 극단적인 방안까지 제시됐겠는가. 그나마 현실성 있는 방안으로 서울대 등 주요대의 법대, 의대 정원을 축소하자는 대학원중심대학이 추진됐으나 시행과정에서 대학들의 반발로 용두사미가 돼 버렸다.

대입제도 개선안이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학벌주의 극복을 위한 방안과 연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시지옥, 고액과외, 공교육 위기, 지방대 붕괴, 해외유학, 고시열풍 등 그 모든 교육현안의 근본 원인이 뿌리깊은 학벌주의에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유망직업을 갖기 위해 명문대에 들어가고,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코흘리개 때부터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먼저 끊어야 한다.

학벌위주의 사회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어떠한 대입제도 개선안도 실효를 거두기 어려운 게 우리의 현주소다.

이 충 재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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