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3월4일 이집트학의 비조로 꼽히는 프랑스 문헌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 42세로 작고했다. 한 해 전 콜레주드프랑스에 신설된 이집트학 교수였던 그가 좀더 오래 살았다면, 찬란했던 이집트 고대 문명에 대한 인류의 정보는 지금보다 더 정밀해졌을지도 모른다. 샹폴리옹의 필생의 역작 '이집트어 문법'과 '이집트어 사전'은 미완 상태로 그의 사후에 출간됐다.179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집트 원정 때 프랑스군이 닥치는 대로 약탈한 이집트 고대 유물들은 당대 유럽의 고대사 연구자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로제타석(石)이라고 불리게 된 검은 돌덩어리도 그 약탈 유물 가운데 하나였다. 프랑스군이 로제타 마을에 요새를 쌓다가 발견한 이 현무암에는 서로 다른 이집트 문자와 그리스어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당시 유럽에 고대 이집트어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로제타석을 포함한 약탈 유물 상당수는 1801년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영국군 손에 넘어가 대영 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고대 이집트어 자료들의 석고 사본은 그 전에 파리로 건너간 상태였다. 그래서 흔히 신성문자라고 불리는 이집트 상형 문자의 해독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처음 시도되었다.
신성문자 해독에 처음 관심을 보인 사람은 아마추어 문헌학자였던 영국 의사 토머스 영이었지만, 그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파리 동양어대학에서 고대 이집트어의 진화어로 추정되는 콥트어를 비롯해 다양한 중근동 언어들을 익힌 샹폴리옹은 이 작업을 하기에 적임자였다. 샹폴리옹은 로제타석의 사본과 그 뒤 필라에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의 이집트어 텍스트를 병서된 그리스어 문장과 꼼꼼히 비교해가며 마침내 신성문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샹폴리옹의 연구를 통해, 신성문자가 표의문자로 출발했지만 표음문자로 진화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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