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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손끝-한국의 장인들]<5> 전통가구 조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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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손끝-한국의 장인들]<5> 전통가구 조화신

입력
200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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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계획과 맞물려 산비탈을 들어선 집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있는 서울 성북구 정릉 4동 언저리. 삼양동으로 넘어가는 터널 바로 앞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 조금 올라가니 숲 사이로 허름한 주택가가 나타난다. 그 아래로 비탈처럼 내려간 길에 대문 하나만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파르게 내려가는 길, 양 옆으로 나무판재들이 잔뜩 늘어서있고 허름한 공방 하나가 다가선다. 이곳이 바로 전통가구를 만드는 목수 조화신(42)씨의 공방이다.전통 목공 가운데 집 짓는 일을 대목(大木), 가구 짜는 일을 소목(小木)이라 하는데 조씨는 소목 분야에서 무형 문화재 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의 수제자인 전수조교이다. 돌아가신 스승을 대신할 인간문화재 지정 여부를 현재 문화재청에서 심의중이니 전통을 이어가는 진짜배기 목수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만든 장은 흔히 보는 전통 가구와는 조금 다르다. 현대적인 맛이 물씬하다. 전통 장은 튼튼한 나무로 틀을 짜고 아름다운 나무로 판재를 만들어 나뭇결의 미감을 그대로 즐기는 것이 특징인데 감나무나 물푸레나무처럼 무늬가 아름다운 나무는 크게 자란 것이 적다 보니 판재의 크기가 얼굴 하나 정도로 자그마한 것이 특징이다. 자그마한 나무 판재에 장식을 더해 오목조목한 맛이 난다.

반면 조씨가 만든 가구는 판재가 1m를 넘어가는 것이 예사다.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보기에도 시원시원하다. 그렇다고 그가 만든 가구가 전통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용목(龍木)을 찾는 눈썰미가 남달라서 용목을 잘 쓰기에 현대가구처럼 보이는 것이다.

용목은 느티나무 가운데서도 무늬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판재를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다. 느티나무는 나무가 튼튼하고 판재가 크게 나와 전통가구의 틀거리 용도로 많이 쓰이는 나무.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무늬가 아름다운 부위만은 용목으로 따로 불리면서 그 어떤 나무보다 귀한 화장재(장식용 나무)로 쓰인다. 문제는 느티나무라고 다 아름다운 무늬를 내는 것은 아니며 나무의 겉모습만 보고서는 용목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둥그런 나무를 어느 방향으로 켜느냐에 따라 용목이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용목을 잘 찾아내는 조씨의 재능은 남다른 솜씨로 평가받는다.

"나무를 한 3년 만지면 어지간한 가구는 만듭니다. 하지만 목재가 가진 특성은 10년이 넘어야 보입니다. 그것도 매일 수없이 많은 나무를 만지고 다듬어야 눈이 생깁니다. "

조씨가 나무를 만지기 시작한 것은 열 다섯살 부터이다. 전남 순창에서 4남1녀 가운데 셋째, 아들로는 둘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가난한 집이 다 그렇듯이 맏아들은 고등학교까지 보냈지만 나머지는 가르칠 여력도 없었기에 그는 삼양동 산동네에 살며 동네 농방에 일하러 들어갔다. 이곳에서 합판으로 막가구를 짜던 그는 79년에 어머니의 권유로 나중에 인간문화재가 된 소목 장인 강대규(1936∼1998)의 공방으로 옮기게 된다. 행상이던 어머니가 "정릉에 기막힌 목수가 있다"며 "농을 짜더라도 제대로 된 곳에서 배워야 밥벌이를 한다"고 권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정릉이나 삼양동이 산허리로 이어지는 한동네였다.

막가구를 짜던 공방에서도 "나왕이든 소나무든 나무토막 하나만 봐도 좋았던" 그는 강대규의 공방에서 홍송이니 느티니 먹감이니 참죽이니 하는 온갖 나무를 보고 "환장하게 좋았다"고 한다. 마침 강대규의 공방에서도 사람을 찾던 때라 그 길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대패질부터 새로 배웠다. 참죽은 억세서 결을 모르면 대패 방향이 잡히지 않았고 향나무는 부드러워 대패질이 수월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리듬을 잃어버리면 결이 쭉쭉 찢어졌다. 그는 "목수들끼리는 대패질 톱질 끌질 세 가지만 보면 서로의 경지를 한눈에 알아본다"고 하는데 그 세 가지를 강대규에게서 철저하게 배웠다. 스승은 언제나 '많이 봐라, 느껴라'를 강조했다.

목수가 한 3년이 되면 얼추 혼자서도 가구를 만들 줄 안다. 그러면 독립하거나 더 많은 돈을 받고 다른 공방으로 옮겨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조씨는 스승 곁을 지켰다. 그는 진짜배기 소목 일을 하는 즐거움은 "내 마음에 억만장자가 있는 것이어서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승이 88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는 90년 소목장 전수자로 지정된다. 그런데 이 때가 조씨로서는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고 한다. 인간문화재는 전수자, 이수자, 전수조교를 거쳐 도달하는 것이라서 전수자는 입문 단계이다. "나무를 10년 만지면 내가 좀 하는구나 싶은데 다시 초보자 신분으로 내려가라니 견뎌내기 힘들었다"고 한다. 5년 이내에 이수자로 올라갈 수 있는데 스승은 조씨를 5년을 꼬박 채우게 한 뒤 이수자로 지정했다. 그 때 스승이 "남 먼저 채워주고 니 5년 채웠다고 서운하나"(스승은 삼천포 사람이다)고 물었을 때 그는 "아닙니다. 저도 정석을 원합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스승은 나중에 전수조교를 지정할 때 누구보다 먼저 조씨를 지명했다. 조씨는 "화산은 폭발하지만 오래가는 것은 미풍"이라고 비유했다.

조씨는 "10년을 배우면 누구나 기능은 다 익히지만 깊이 아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도 10년이 됐을 때는 자신감이 들었지만 20년이 되어서야 내가 이제야 뭘 알고 가구를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조씨가 일하는 걸 옆에서 보면 모든 일이 쉬워보인다. 전통가구의 이음 방식 가운데서도 꽤 복잡한 맞짜임 같은 것도 투덕투덕 해내고 대패질은 휘루룩, 톱질은 슬근슬근, 주저함이 없다. 사개짜임을 하기 위해 2cm 정도 길이로 나무 모서리를 톱질하는 것이 순식간인데도 끝까지 선이 고르다. 그는 "쉬워보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고 웃는다.

전통가구는 나무를 구입하는 데서 시작한다. 3년에서 5년은 말려야 나중에 가구로 만들어도 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린 나무로 틀을 짜고 덧대어주어야 할 나무는 아교로 붙인 다음에는 다시 몇 달을 기다려 손을 봐준 뒤에 조립을 한다. 이 때문에 가구 하나 나오는 기간은 짧아야 몇 달, 오래는 몇 년이 걸린다. 이렇게 공들여 나오는 전통 가구가 아직은 시장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데 그는 불만이 많다. 이 때문에 현대식 가정생활에 맞춰 전통가구의 디자인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실험도 계속하고 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제자될 젊은이 없나요" 중년층만 취미로 배우려해 고민

수공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정릉에 있는 조화신씨의 공방에도 목공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온다. 조씨의 고민은 정작 전수생으로 키우고 싶은 젊은 세대는 없고 30대부터 50대까지 나이든 세대가 취미 겸 노후 소일거리 삼아 배우기를 원한다는 데 있다. "30살 이전에 도제 교육을 받아야 나무에 대해 훤해진다"는 조씨는 젊은 제자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이든 제자를 받기가 주저된다고 한다.

공방 가까이 있는 대학의 공예과 학생들이 졸업작품을 만들기 위해 찾아온 적은 있지만 "디자인은 출중한데 나무의 종류와 쓰임새를 제대로 몰라서 가구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더라"고 평가했다. 기본부터 배우려고는 들지 않아서 가르치면서 허탈했다고 한다. 그의 공방에는 그 때 학생들이 남겨놓고 간 작품들이 흩어져 있다. 그의 말대로 디자인이나 용도는 현대적이었지만 문이 틀어져 있었다.

그가 나이든 제자를 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만일 나중에 젊은 사람을 후계자로 인정할 경우 먼저 배운, 나이든 사람들이 딴죽을 걸까 우려되어서라고 한다. 취미반과 도제반을 구분해서 가르치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도제로 배울 젊은이들을 찾는다"는 말만 거듭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교육받는 이유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최상의 기쁨을 느끼고자 하는 것인데 아직은 세상이 외형적인 위치를 높이는 방법을 일러주는 걸 교육이라고 한다"며 "5년, 10년 안에는 자기가 배운 걸 일 안에서 풀어먹으며 사는 것이 기쁨이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쫓아다니는 것은 불행하다는 것을 세상 모두가 알게 될 것"이라며 그 때는 초등학생부터 소목 일을 배우러 오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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