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동갑내기로 금년이 환갑이다. 지난 설 무렵 자식들 주선으로 열흘 동안 호주와 뉴질랜드를 다녀왔다. 여행 안내서를 보니 면적은 넓고 인구는 적으며 역사는 짧지만 잘 사는 나라이고 특히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우방이라고 했다.시드니까지는 비행기로 10시간이었는데 호주 북단에서 시드니까지가 4시간이나 걸렸다. 공항을 나서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도처에 추돌한 차가 즐비했다. 워낙 건조한 지대라 빗길 운전에 익숙하지 못해 어쩌다 비가 오면 사고가 많이 난다고 했다.
안개까지 심해 일정을 반으로 줄이고 하이드로 마제스틱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100년 전에 지었다는 호텔은 소음이 심한 환풍기에 욕조 없는 화장실 등 시설은 낡고 방마저 좁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호주인들은 이 호텔에 대해 애착이 대단하다고 했다. 지난 겨울 큰 산불이 나서 호텔 가까이 불길이 다가오자 경찰과 소방대원이 호텔 주위에 인의 장벽을 쳐 불길을 막았을 정도였다. 역사가 짧다 보니 나이 많은 건물이 유적인 셈이다.
얼마 전 국내 여행 때 모처에서 허물어진 성벽이 방치돼 있는 것을 본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며칠 전에는 박목월 시인의 고택까지 철거하지 않았나. 이러면 안되는데 싶었다.
다음날은 시드니 항구 일대를 관광했다. 젊은 여성들 노출이 심해 몹시 민망했다. 밤 10시쯤 젊은이들의 광장이라는 '달링 하버'를 찾았다. 옷차림이나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보아 광란의 밤일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마침 1월 26일 '호주의 날'을 앞둔 금요일 밤이었다. 귀를 찢을 듯한 밴드에 맞춰 몸을 흔드는 무리와 불 쇼에 탄성을 지르는 무리 등 언뜻 보기에는 우리의 대학로와 대동소이했다. 손마다 아이스크림 등 먹을 것을 들고 있었다.
틀림없이 바닥은 쓰레기가 널려 있겠지 하며 주변을 살폈으나 헛수고였다. 쓰레기는 고사하고 담배 꽁초 하나 없었다. 높은 도덕심과 시민의식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짧은 기간이지만 호주 사람들은 여유롭게 사는 것 같아 몹시 부러웠다. 편안한 얼굴에 바쁠 것 없다는 듯한 느린 행동, 수다를 떨어도 끝날 때까지 다 들어주는 아량과 철저한 준법정신을 엿볼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우승남·서울 노원구 상계9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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