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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은 구멍뚫린 도너츠"/ 세번째 창작집 "오빠가 돌아왔다" 낸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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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은 구멍뚫린 도너츠"/ 세번째 창작집 "오빠가 돌아왔다" 낸 김영하

입력
200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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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창작집을 낸 뒤 소설가 김영하(36)씨는 "마지막 단편집이 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다. 그의 말은 지켜지기도 했고 지켜지지 않기도 했다. 8편의 단편과 콩트를 묶은 세번째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창비 발행)를 5년 만에 냈으니 지키지 않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켰다. 그는 이번 창작집으로 기왕의 '김영하 식 단편'에 마지막을 고했다.1일 만난 그는 "앞서 낸 두 권의 창작집에서 나는 '이야기로 꽉 찬 이야기'를 쓰는 데 집중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삐삐라는 통신기에서 소통의 부재(不在)를 붙잡아냈고('호출'), 가정과 직장에서 점점 작아지는 남자를 투명인간의 비유로 포착했다('고압선'). 그의 날카로운 촉수는 언제나 새롭고 자극적인 시대의 징후를 소설로 담아냈다. 빵 만드는 사람으로 치자면 그는 빵 속에 넣을 만한 더욱 달착지근한 잼과 크림을 찾았던 셈이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도너츠를 만들었다. 도너츠가 도너츠인 것은 빈 구멍이 있기 때문. 그렇듯 이야기를 비워놓음으로써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표제작에서 돌아온 오빠와 동거녀로 인해 빚어지는 소란을 맛만 보여주는 식이다. 그의 새 소설들은 뭔가 얘기하려다 만 듯하며, 최근작으로 올수록 더욱 그렇다. "이를테면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쓸 때, 예전의 나였다면 남자의 사인(死因)인 자연발화 부분을 전면에 내세웠을 것이다. 그게 가장 극적인 부분이니까. 그런데 이제 나는 그것을 가능한 한 뒤로 돌려놓는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소설가인 화자가 들려주는 친구들 이야기다. 주일학교 친구 바오로는 신부가 되었고 그의 연인이었던 미경은 화자가 소개시켜 준 회계사와 결혼했다. 오랜만에 만난 바오로에게서 미경과 잤다는 얘길 들었고, 미경을 만나서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발화점이 이상하게도 사망자의 심장 부근이라는 거야. 이런 사건을 자연발화라고 불러. 라이터도, 휘발유도 없이 그냥 한 인간의 내부에서 불이 타올라 모든 걸 태워버리는 거야.' 소설은 화자가 집에 돌아와 우는 것으로 끝난다. 독자로서는 당혹스럽다. '그냥 한 인간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가 나올 법한데, 정작 작가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럼에도 김씨의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안겨지는 것은 이성과 합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인에 대한 어떤 섬뜩한 서늘함이다. 묘사를 동원해 가슴을 울리는 대신, 작가는 묘사를 비워놓음으로써 곧바로 가슴을 쳐버린다. "여행을 다녀오면 집이 어딘가 달라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은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달라진 것인데." 김씨 자신도 달라졌다. 그의 눈에 일상에 숨어있는 기묘하고 미세한 감각이 보이는데, 그는 소설에서 그 얘기를 최대한 미뤄놓는다. 미뤄진 이야기가 독자에게 맡겨진다.

2001년 장편 '아랑은 왜'를 냈을 때 "이야기의 주인은 이야기"라고 했던 그의 말은 또 한번 바뀔 것 같다. 새 소설집에서 김영하 식 이야기의 주인은 그것을 듣는 사람이 되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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