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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별 보충학습 시범 5개월째… 서울 노곡中 현장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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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별 보충학습 시범 5개월째… 서울 노곡中 현장취재

입력
200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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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부정사가 목적 보어로 오는 동사는 '와타페아오(WATAPEAO)'로 외웁니다. 알겠죠?" "네! Want, Allow, Tell, Advise, Promise, Expect, Ask, Order."지난달 26일 서울 도봉구 창동 노곡중 1학년 교실.

올해 2학년으로 올라가는 16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선생님을 따라 단어들을 외우며 참고서 한 귀퉁이에 열심히 받아 적는다. 방학 중인데도 수업의 열기가 제법 뜨겁다.

이 학교는 지난해 10월부터 방과 후 보충학습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학기의 경우 오후 6시부터 9시30분까지 한 반에 15∼16명씩 모두 6개의 종합반을 개설했고, 방학 중에는 오전 9시부터 12시30분까지 3개 반을 열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주요 교과로 이뤄진 종합반은 학원처럼 수준별로 편성했고, 강사진은 전원 노곡중 교사와 인근 학교 교사로 구성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학교마다 수준별 보충학습이 일제히 실시된다. 방과 후 사설학원으로 재교육을 받으러 가는 학생들의 발길을 잡아 둘 곳은 학교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당국의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보충수업의 부활이다" "학교의 학원화다" "과연 교사들이 움직여줄지 의문이다"라는 등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일단 지난 5개월간 시범운영을 해온 노곡중의 성과는 고무적이다. 방과 후 보충학습 시행 이후 사교육비의 65% 가량이 절감됐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인근 학원의 종합반 수강료는 월 평균 29만3,000원으로 학교보다 19만1,000원이 더 비싸다. 노곡중 학생의 80%(936명)가 학원 및 과외 교육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사교육비 경감액이 21억원에 달한다는 추산이다.

학생 대상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3%가 수준별 보충학습에 '대체로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고, 78%는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 학교 이선아(14)양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보충학습만 충실히 했는데도 성적이 평균 5점 가량 올랐다"며 "학원은 숙제를 많이 내주기 때문에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반면, 학교에서는 스스로 하는 학습법을 길러줘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곡중의 실험이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학교에서도 수준별 보충학습이 정착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교사들의 지적이다. 우선 노곡중은 인근 13∼25평의 중·소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 지역 학부모들에게는 학교의 사교육비 절감 프로그램이 반가울지 몰라도, 강남 등 여타 지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장영기 교감은 "사교육비 지출이 아깝지 않은 강남의 학부모는 방과 후 보충학습의 저렴한 비용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또 지금처럼 '학교의 유휴시설과 인적자원을 200% 활용한다'라는 식의 밀어붙이기식 수준별 보충학습으로는 학생들의 호응을 받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밤에 학교 하나를 더 운영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지요. 우리는 연구시범 학교라 그럭저럭 운영이 가능했지만, 다른 학교에서 정규수업에 얽매여 있는 교사에게 심야 보충학습까지 떠맡긴다면 금세 나가떨어지고 말 겁니다."(어학선 연구부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곡중의 수준별 보충학습에 참여하고 있는 교사의 90% 이상이 사교육비 경감에 도움이 된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은 의미 있는 대목이다.

교사들은 "정규수업을 정상화해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 정도(正道)"라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학교가 어떤 식으로든 사교육 수요를 떠안아야 한다는 현실론에도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이다.

어학선 부장교사는 "결국 방과 후 보충학습의 성패는 교육당국이 어떻게 교사의 사기를 진작하고, 학원 못지않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보완책을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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