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재개된 2차 6자 회담이 세계적 관심 속에 끝났다.우리 정부가 희망했던 '핵 포기, 안전보장'의 선언적 동시 교환을 통한 북 핵 경색 국면타결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평가된다.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한 불가역적인 북 핵 해체와 고농축 우라늄 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북미 간의 현저한 인식차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없는 한반도'와 '북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더구나 2분기 내에 3차 회담을 베이징에서 개최하고 이를 위한 실무그룹을 구성키로 한 것도 평화적 해결에 새로운 모멘텀이 되었다고 하겠다.
이번 회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것은 아직도 북미 간 입장차가 크다는 점이다. 미국은 북한에 리비아처럼 대량살상무기를 과감히 포기하면 응분의 보상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고, 반면 북한은 미국의 이러한 제안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라크 식으로 사찰, 해체한 후 미국이 북한 체제를 압살, 붕괴시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일각에서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체제 전환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리비아 모델을 반대할 국가는 없을 것이다. 아직 두고 볼 일이지만 대량살상무기 완전 폐기 대가로 경제제재가 철회되고 내정 불간섭 원칙이 담보되는 동시에 미국, 일본과의 관계가 정상화된다면 북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리비아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경제제재의 장기간 지속에 따른 리비아 경제의 피폐화와 대내적 정통성 악화, 소련 붕괴 이후 후견 세력 부재, 그리고 사담 후세인 몰락에 따른 전시효과 등 국내외적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접근 방식이다. 영국은 미국을 대신하여 리비아와의 양자접촉을 9개월 이상 집요하게 추진해 왔다. 그리고 이 양자협상은 공식 외교 채널이 아니라 양국 정보기관을 통해 은밀히 이루어졌다. 리비아 문제의 전향적 타결은 이 같이 물밑 접촉을 통한 '조용한 외교'가 만들어낸 승리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영국 정보 당국이 런던정경대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한, 무아마르 가다피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사이프 알 이슬람 가다피를 주요 협상 채널로 활용한 것도 아주 주효했다. 마지막으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직접적 지원 하에 비밀 협상을 추진, 관료정치의 이전투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성공의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리비아 모델이 주는 함의는 크다. 무엇보다 6자 회담이라는 공식 채널만으로는 돌파구 마련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형태로든 북한과의 비공식적 양자 접촉이 이루어져야 한다. 11월 대통령 선거 때문에 미국이 할 수 없다면 한국이라도 영국식의 중재역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관료정치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와 같은 북 핵 전담 정책조정관이나 특사를 임명하고, 이를 통해 북한 지도부와 직접적 협상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은밀한 물밑 양자 접촉은 6자 회담의 보완적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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