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털루의 승리는 이튼 교정에서 이루어졌다."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군대를 격파하고 나서 한 말이다. 이튼은 영국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다. 1440년 헨리 6세가 설립했는데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사관학교 진학 예정자를 교육하는 소위 특수목적고다. 웰링턴 장군은 이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잘 받아서 승리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오래 전에 명문 학교가 없어진 우리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얘기다.
예전에 여론을 수렴하지도 않고 단숨에 평준화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독재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다. 나의 모교도 그렇게 해서 사라졌다. 학교 건물이야 아직 거기 있지만 시험을 치르지 않고 학생 충원이 가능한 학교가 어떻게 더 이상 모교일 수 있겠는가.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고교 평준화 정책이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실증 분석'은 평준화가 우리 교육 발전에 기여한 바가 미미함을 보여준다. 평준화가 '이튼의 교정'에서와 같은 감동과 자부심을 빼앗아 간 것만은 확실하다. 이것은 대단한 국민적 손실이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교육시키고 평등하게 살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세상에는 자동차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동차 바퀴에 볼트를 끼우는 사람도 있다. 두 사람에게 똑같은 대우를 해 줘야 할까.
민주주의가 우리보다 앞선 독일, 프랑스에서도 평준화라는 개념은 없다. 오히려 직업교육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여러 단계의 차등을 두어 능력에 맞는 수업을 시키고 있다. 최근 중국도 이들 나라의 교육방식을 모델로 삼아 대대적인 교육개혁에 착수했다. 우리는 왜 그런 방법을 시도해 보지 않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나라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생 52만명 가운데서 과반수가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서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적으로도 굉장한 낭비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대학도 들어가기는 쉬워도 졸업하기는 어려운 서구식 엄격한 학사 관리도 빨리 실천에 옮겨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운명은 청년의 교육에 달려 있다'고 했고 플라톤은 '소년들에게 공부를 강제와 엄격함으로 시키지 말고 흥미를 품도록 유도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마음의 긴장을 발견할 것'이라고 했다. 교육 문제의 해답은 이미 옛날에 나와 있다.
손 풍 삼 순천향대 교수 국제문화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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