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읍내에서 남동쪽으로 6㎞쯤 가면 진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85m의 첨찰산(尖察山)이 눈에 들어온다. 울창한 상록수로 덮여 있는 남서쪽 산자락이 포근한 어머니 품처럼 사천리(斜川里) 마을을 감싸 안고 있다. 이 산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냇물이 마을 앞을 약간 비껴 지나간다고 해서 일명 '빗기내 마을'이란다. 산자락에는 신라 문성왕 때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하는 고찰 쌍계사와 쌍계사 바로 이웃에는 남종문인화의 본산인 운림산방(雲林山房)이 있다.쌍계사 골짜기를 따라 올라 가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한 낮에도 숲속에 햇빛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상록활엽수가 빽빽이 들어선 넓은 숲을 만날 수가 있다. 후박나무, 가시나무류, 생달나무, 푸조나무, 참식나무, 동백나무 등 50여종의 상록활엽수가 서로 어우러지고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와 같은 낙엽활엽수들도 군데군데 섞여 있어 더욱 조화로운 아름다운 숲을 형성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 107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 상록활엽수림은 한 여름에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오한을 느낄 정도로 차갑고, 깊은 숲에 들어가면 바로 옆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많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 숲에서는 특산 식물인 삼색싸리를 비교적 쉽게 볼 수 있고, 숲 가장자리에는 진도싸리와 최근에 정체가 밝혀진 돌동부가 자라고 있다. 돌동부는 열매가 동부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여기서만 자라며, 돌팥이라고도 하는데 뿌리를 먹을 수 있다. 또한 이곳 숲에는 천연기념물 제 204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는 아름다운 팔색조(파랑새)가 숲속 바위에 둥지를 틀고 있어서, 빗기내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수려한 산과 숲 그리고 드넓은 청정 바다가 펼쳐져 있는 자연환경 때문인지 이곳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소질은 남다르다. 조선조 남화의 대가 소치(所痴) 허유 선생이 거처하며 작품 활동을 하던 운림산방도 바로 이런 아름다운 숲과 수려한 자연환경 때문에 존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치선생이 1808년 이곳에서 태어나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선생으로부터 서화수업을 받고 중국 원나라 4대 화가 황공망과 견줄만하다는 칭송까지 받을 정도로 대성 할 수 있었던 예술의 뿌리는 바로 이곳 빗기내 마을의 자연 환경에 있었다. 1856년 스승인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이곳 운림산방에 돌아와서 여생을 보냈는데, 그의 뜻을 이어 아들 허은과 허형, 손자 남농 허건과 증손자까지 4대가 계속하여 화가의 전통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와 같이 빗기내 마을의 상록수림을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옛날부터 이곳 사람들의 문화예술의 원천이 되어 많은 예술인을 배출하게 만들었다. 빗기내 사람들의 마을지에 "빗기내 마을은 물이 맑고 숲이 좋아서 옛날부터 문인과 예술인이 많이 나왔으며 지금도 향우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힘이 솟구친다"고 하였다. 또한 마을지 저자 박정석(진도군청 과장)씨는 책머리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나를 낳아준 고향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빗기내 이야기를 쓴다"
그렇다. 좋은 숲을 포함한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일깨워 줄 수도 있고 또한 이룰 수도 있게 한다. 진도 사천리 빗기내 사람들의 선조가 그랬고 또 그 후손들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 않는가?
정헌관 국립산림과학원 hgcung2095@foa.g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