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삼성전자 생활가전 부문의 실무 사령탑을 맡고 있는 시스템가전사업부 이문용(52) 부사장의 책상에는 항상 드라이버가 놓여있다. 언제라도 가전제품을 분해, 조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이 부사장이 그 동안 분해, 조립한 가전제품은 줄잡아 10여종. 자신이 만든 제품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경쟁사 제품은 무엇이 다른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서다.
그가 분해, 조립 작업을 벌이는 곳은 시스템가전사업부 연구실. 작업 도중에 담당 연구원들과 함께 문제점과 해결책 등을 놓고 으레 난상토론을 벌이기 때문에 분해에서 다시 조립하기까지는 보통 한 제품 당 6시간이 넘게 걸린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품을 뜯어보면 반드시 문제가 있습니다. 하다못해 나사 수 하나라도 우리가 경쟁사보다 많죠. 그만큼 조립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케팅이나 브랜드 가치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경쟁력은 제품력에서 나옵니다."
그의 이 같은 믿음은 반도체 개발에만 20여년간 몸담았던 남다른 이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미국 오하이오대 재료공학 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지난해부터 생활가전 분야로 옮겨왔다.
생활가전 부문은 잘 나가는 삼성전자에서도 지난해 유일하게 적자를 냈던 사업부. 올 초 인사에서 윤종용 부회장이 직접 총괄을 맡고 이 부사장이 실무사령탑으로 임명되자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배수의 진'을 쳤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작 이 부사장은 의외로 느긋했다. "판매대수 세계 1위에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많이 팔아도 이윤을 남기지를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첨단 기술과 원가경쟁력으로 시장을 주도하는 진정한 1위가 되겠습니다."
양보다 질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실제로 올해부터 양문형 냉장고, 드럼세탁기 등 이른바 프리미엄 가전제품의 매출 비중을 6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산 가전의 저가공세에 대해서도 "제조·기술·원가 분야에서 혁신을 이뤄 체질만 강화하면 가격경쟁력 공세는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사실 반도체 미세공정 개발에 앞장섰고 반도체연구소장으로 기가(Giga) 반도체 시대 개막에 기여했던 그에게는 후발주자로서 치열한 반도체 경쟁에서 살아 남아 선두에 올라서면서 갈고 닦은 싸움꾼 기질이 엿보였다.
"삼성전자 가전분야가 아직 세계 선두와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반도체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반도체 1위에 올라섰던 경험을 토대로 세계 선두에 오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부사장은 삼성전자 시스템 가전사업부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연구원 시절에도 매일 아침 5시30분에 출근했던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인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어김없이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선다.
"잘못 내린 의사결정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을 자주할 만큼 최고경영자(CEO)로서 빠른 의사결정을 중요시하는 그는 등산을 좋아하며 10㎞ 마라톤을 50분대에 완주하는 마라톤 광이기도 하다.
/수원=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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