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햇빛 쏟아지다'는 광고가 아니다. 드라마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갑자기 특정 제과점 브랜드의 케이크가 먹고 싶다. 왜일까? 2월 25일, 26일 방영된 5, 6회분을 보면 답이 나온다.필립(조현재)의 아버지 정승범 회장이 밤중에 사무실에 앉아 생크림 케이크 한 개를 통째로 먹어 치운다. 그의 큰 아들 상국이 "우리 회장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분께서 다 드셨다"며 좋아하는 먹음직스러운 그 케이크 옆에는 '파리바케트' 상자가 버젓이 놓여있다. 필립이 병원에 입원한 연우(송혜교)의 동생 예강이를 위해 케이크를 선물하는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파리바케트' 상자는 조연급으로 '출연'한다. 상표를 'PETIT CHOU'로 바꿨지만 노란 바탕에 파란 줄무늬 상자가 파리 바케트를 상징한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안다.
'햇빛 쏟아지다' 협찬사인 파리바케트 측은 신이 났다. 'TV 속에만 있던 케이크, 지금 당신에게 옵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드라마에 나왔거나 앞으로 나올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행운 쏟아지다'라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SBS 주말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재민(조인성)은 수정(하지원)에게 (주)팬택&큐리텔의 신형 휴대폰을 선물한다. 팬택&큐리텔이 가수 보아를 앞세워 광고 공세를 펴고 있는 이 분홍색 휴대폰을 수정은 자나깨나 들고 다니며 인욱과 재민의 전화를 번갈아가며 받는다. 그 뿐 아니다. 인욱과 재민은 '파크랜드'를 그대로 연상시키는 '팍스랜드' 로고가 걸려있는 방에서 "중저가 이미지를 탈피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쉬운 일 일까?"라며 마케팅 전략을 논의한다. 극중 내용을 협찬사인 '파크랜드'의 실제 상황과 흡사하게 보여줌으로써 광고 효과를 노린 것이다.
2월 3일 종영한 SBS '천국의 계단'은 간접광고 전시장이었다. 송주(권상우)와 정서(최지우)가 어린시절 나눠가진, 30만원을 넘는 목걸이는 요즘도 SBS 홈페이지의 배너광고를 통해 팔리고 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롯데월드는 방송 내내 특수를 누렸다. 광고효과가 얼마나 컸던지 롯데월드는 이장수 PD와 주인공들에게 평생 자유이용권을 제공했다.
드라마 속 간접광고의 폐해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갈수록 그 수위와 빈도가 높아지고 수법도 교묘해진다는 점. 특정 제품이 단순한 소품을 넘어 주인공들의 사랑과 우정, 복잡미묘한 감정까지 담는 '그 무엇'으로 둔갑, 이야기 전개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SBS가 심하다.
방송위원회는 이처럼 날로 도를 더해가는 드라마 속 간접광고를 강력 규제하기 위해 심의규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보다 시급한 것은 제작 관행의 변화.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충분한 제작비를 주지 않고, 제작사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협찬사로부터 촬영편의나 돈을 받고 간접광고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드라마가 '새로운 광고 장르'로 탈바꿈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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