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A중학교 교사 S씨는 지난해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학교의 특수시책 사업에 대해 실적 보고를 올리라는 공문을 받았다. 그는 사업을 제대로 시행하지도 않은데다, 도저히 밖에 알릴 수 없을 만큼 흉내를 내는 정도의 부실한 내용이어서 '관련사항 없음'이라고 간단히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교감이 서류를 보고는 "어차피 다 그렇고 그런 거니까 하지 않았어도 했다고 써 넣고, 모범 사례도 적당히 만들어 올리라"며 반려했다.S교사는 어차피 책임 소재가 분명히 드러나는 일이기에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버텼으나, 교감은 "그럴 리도 없지만 혹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을 질 테니 걱정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다그쳤다. S교사는 인터넷과 기존 서류를 짜깁기해 그럴듯한 보고서를 뚝딱 꾸며냈다. 특수시책 사업에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그동안 보고된 사례들을 종합한 것이어서, 관할 교육청 담당자가 그 사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 해당 사이트의 정보만 훑어봤어도 베껴 편집한 내용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뒤 짜깁기해 만든 거짓 서류는 '최우수 모범사례'로 당당히 선정됐다. 교무실에서 시상식이 있던 날 교감은 무척 기뻐했지만, S교사는 너무 참담하고 부끄러워 교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보고서에 모델 사례로 이름이 올랐던 학생은 영문도 모른 채 교육장 표창을 받았고, S교사는 그 학생에게 이름을 빌려 쓴 데 대해 '용서'를 구해야 했다.
교감은 며칠 전 S교사를 불러 올해에도 교육청의 특수시책 사업을 맡으라고 했다. "지난 해 잘(?) 했으니까 올해도 부탁한다"는 당부였다.
S교사는 "아직도 학교는 군대처럼 상명하복의 지휘·감독 체계가 분명해 해바라기가 늘 해를 향하듯 교육부와 교육청이라는 상급 관청의 '오더'가 떨어져야만 움직인다"며 "유능한 교사는 수업과 학급 운영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급 관청에 '충성'하고 공문 처리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라고 토로했다. S교사가 최근 모 인터넷신문에 이 같은 사연을 고백하자 공감을 나타내는 교사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교육현장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이해 못할 일들이 일어났듯이 아마 내일도 일어날 것"이라며 "교육 철학이니, 교육적 소신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은 접더라도 그저 '상식적'이고 누가 봐도 '정상적'인 곳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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