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국가적 지도자의 수준에서는 한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해선 안 된다"고 언급한 것은 대통령 취임 이후 일본을 겨냥한 가장 강력한 경고이다.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방일 때 일본의 유사법제 추진 등에 대해 "한국인들은 의혹과 불안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면서 우려를 표시했으나 기본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돕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리 배포된 연설문에는 없는 내용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최근 '매년 신사참배 강행' 발언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의 "노 대통령이 29일 낮 3·1절 기념사 원고 수정 지시를 내린 데 이어 1일 아침 직접 2시간가량 연설문을 다듬었다"는 전언을 감안하면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임 중 발언보다 더 높은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95년 11월 일본 자민당 간부들의 과거사 왜곡 발언 등과 관련, "이번에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극단적 발언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10월 청와대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갖고 "신사참배를 짚고 가지 않으면 다른 합의가 아무리 많아도 한일 관계 개선은 요원하다" 등의 주문을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연설은 고이즈미 총리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고 과거사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아소 다로 전 자민당 정조회장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이는 한일 관계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외교적 해석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총선 득표 전략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일본 문제를 꺼냈다는 시각도 있다. 야권 관계자들은 "최근 열린우리당의 선거전략 문건에도 유권자의 애국심 기조를 형성하기 위해 친일·독도·북핵·고구려사 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느냐"며 의구심을 표출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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