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국제 영화제 폐막식에서는 60년 전 제작된 한 편의 흑백 영화에 관중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5월에 개최된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도 관객들은 화려한 대작들보다 약 70년 전에 만든 무성 영화에 온갖 찬사를 보냈다. 두 작품은 각각 위대한 희극왕 찰리 채플린(1889∼1977)이 만든 '위대한 독재자'(1940)와 '모던 타임즈'(1936)였다.두 작품 모두 여러 번 극장에서 상영됐고 TV 방영까지 이뤄졌기 때문에 내용상 신기할 것이 없는데도 베를린과 칸이 흥분했던 이유는 바로 DVD 제작을 위해 디지털 화질 복원기술을 적용, 놀라울 만큼 깨끗한 영상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MK2사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화질을 복원한 이 작품들은 70년이라는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채플린 팬을 위한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MK2사는 오랜 시간 공들여 채플린의 주요 필름을 모두 복사해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매 컷마다 새로 그림을 그리듯 정성스럽게 먼지를 털어내고 필름의 긁힌 자국 등 온갖 잡티를 제거한 뒤 최신 영화처럼 생생한 화질로 다시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장 그림 복원 작업에 비유했다.
채플린 프리미엄 콜렉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새로 태어난 채플린의 작품을 이달 초와 중순에 걸쳐 DVD로 볼 수 있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는 1월에 '위대한 독재자' '황금광시대' '모던타임즈' '라임라이트' 등 4편의 장편을 풍성한 부록과 함께 9장의 디스크로 묶은 '프리미엄 콜렉션 박스세트 1'을 선보인데 이어 각각 6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박스세트2와 3을 12일 내놓는다. 이보다 앞서 5일에는 작품별로 낱장 DVD가 출시될 예정이다.
박스세트2에는 '시티라이트' '뉴욕의 왕' '파리의 여인' '단편선'이 들어 있으며 박스세트3에는 '키드' '살인광시대' '서커스' '찰리 채플린 다큐멘터리'를 묶어 놓았다. 채플린의 주요 작품을 총 망라한 셈이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매 작품마다 함께 수록된 부록 영상과 다큐멘터리. MK2 TV에서 기획한 다큐멘터리에는 채플린의 아내 리타 그레이 채플린이 들려주는 인간 채플린 이야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전문가적인 안목으로 해설한 작품 감상, 짐 자무시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 등이 털어놓은 채플린이 영화계에 미친 영향 등이 들어 있다.
또 박스세트1과 3에 중복 수록된 '찰리 채플린 다큐멘터리'는 프랑스 로락 프로덕션에서 만든 2시간 분량의 채플린 일대기로,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채플린 영상과 비화가 들어 있어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 여기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내에서만 앨범 형태의 바인더형 고급 패키지를 선보여 소장욕구를 부추긴다.
문제는 가격. 고급 패키지와 내용물이 많아서인지 출시사에서 사전 예고한 가격이 박스세트별로 7만∼8만원대에 이르는 등 다소 비싼 편이다. 오래전부터 소장가치가 높은 박스세트를 기다려온 DVD 애호가들은 지나친 고가 정책이라며 DVD 동호회 게시판 등을 통해 출시사를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관계자는 "미국처럼 박스세트2와 3을 하나로 합쳐서 내놓으면 10만원대가 넘기 때문에 이용자들을 위해 박스세트를 분리해 가격을 낮추는 등 합리적인 가격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채플린은 누구인가
"롱샷은 희극이고, 클로즈업은 비극이다."
이 한마디에 찰리 채플린의 영화철학이 모두 담겨 있다. 그는 멀리서 보면 웃고 있는 얼굴이지만 클로즈업하면 눈물이 흐르는 영상을 통해 희극 뒤에 감춰진 비극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감독, 각본, 제작을 겸했던 전설적인 희극배우 채플린은 영국에서 태어나 고아원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7세때 극단에 입단해 중절모에 코밑수염, 헐렁한 긴 바지와 지팡이를 든 방랑자 역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그의 방랑자는 서민의 우상으로 떠오르며 1914년 이후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9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를 만들어 장편 영화를 제작했으나 50년대 서슬퍼런 매카시즘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을 떠났다. 이후 72년 아카데미 특별공로상을 받기 위해 잠시 미국에 들렀으나 다시 스위스로 돌아갔으며 77년 크리스마스에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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