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속담이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미숙이는 사귄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평생을 같이 지내온 것처럼 느껴진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학부모 모임에 갔다가 처음 만났는데 나보다 두 살 어린데도 생각이 깊고 성격이 쾌활해서 오히려 언니처럼 생각될 때가 적지 않다. 이제는 하루도 연락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미숙이 남편은 공구 대리점 사장이다. 그래서 생활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나는 미숙이의 풍족한 생활을 보면서 부러운 생각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2년 전 미숙이 가정에 불행이 닥쳤다. 남편이 사업에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부도를 맞으면서 미숙이는 살던 집과 상가 건물을 처분해야 했던 것이다.
미숙이 얼굴에는 쓸쓸함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나 듣던 부도를 주변에서 목격하기는 처음이었다. 부도가 한 가정에 얼마나 커다란 불행을 가져다 주는지 알게 됐다.
이후 미숙이를 만나려면 직접 집으로 찾아가야 했다. 전화 요금을 내지 못해 전화가 끊긴 것이다. 미숙이와 이야기하는 도중에 채권자들이 들이닥쳐 "집을 빨리 팔아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것도 봤다. 미숙이의 승용차는 압류됐다.
미숙이는 간신히 3,000만원을 마련해 작은 도시로 이사를 갔다. 5개월이 지나서야 미숙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언니, 오랫동안 소식을 전해주지 못해 미안해. 내가 찾아갈게."
놀랍게도 미숙이는 트럭을 직접 몰고 나타났다. "남편이 재기하는 것을 돕기 위해 대형 차량 운전면허증을 땄어. 공구를 직접 차에 싣고 배달하고 있어."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모습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던지….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 먹고 대추차 한 잔을 끝으로 미숙이와 헤어졌다. 이튿날 잘 들어갔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저녁 가게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죄인이 된 것처럼 미안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납품 하러 가는 길에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는 미숙이의 목소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씩씩했다. 나는 미숙이에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미숙아! 지금은 힘들겠지만 넌 반드시 해낼 거야. 너를 응원하는 언니가 있다는 것 알지? 미숙아, 힘 내!
/haelin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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