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가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에 치이는 것은 아니다. 김하늘 강동원 주연의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두 주연 배우의 적절한 오버연기로 '태극기…'에 이어 2월21∼22일 주말 서울 기준 5만8,500명이 봐 '태극기…'(23만4,512명)에 이어 흥행 2위를 기록했고, '목포는 항구다'(4만3,640명)도 4위에 올랐다. 관객마다 취향과 선호 장르가 다른 법이다.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사진)도 두 대작 틈새에서 꾸준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외화가 개봉을 꺼렸던 2월13일 당당히 선을 보여 2주만에 서울 21만1,000명, 전국 40만명의 관객이 봤다. 이 영화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심하게 말하면 낯간지러운 격려의 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와 있다. '사랑은 젊은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다'(nabebop) '잭 니컬슨과 다이앤 키튼의 연기에 박수를'(kawaiisy79)….
영화는 바람둥이 중년 샌본(잭 니컬슨)과 이혼 후 혼자 사는 여성작가 배리(다이앤 키튼)의 로맨스. 당초 샌본은 배리의 젊은 딸 마린(아만다 피트)과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배리를 알게 되면서 보다 성숙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툭하면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섹스를 하기도 힘든 중년의 나이이지만, 온갖 풍파 다 겪고도 순수함을 지닌 중년이기에 그들이 일궈내는 사랑이 아름답기만 하다.
배리에게 사랑을 느끼고도 바람둥이 시절의 자유를 놓치기 싫어 머뭇거리는 샌본, 훗날 모든 이기심과 계산을 버리고 배리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샌본의 모습에 특히 나이 든 중년 관객이 감동했다. 이미 '왓 위민 원트'를 통해 여성 심리 꿰뚫기에 일가를 이룬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이번에는 중년 남성의 변덕 같은 심리도 제대로 간파한 셈이다.
홍보대행사 올댓시네마는 "나이 든 배우 2명이 주인공이어서 개봉 당시만 해도 '로맨스 그레이'로 비춰질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신세대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고 있다"며 "'태극기…'와 '실미도'가 극장을 거의 장악하는 바람에 오히려 갈 곳이 없는 중년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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