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엽아, 한국을 잊어라!"28, 29일 이틀에 걸친 시범경기에서 6타수1안타(0.167·볼넷1·삼진3)의 초라한 성적표를 남긴 이승엽(28 ·롯데 마린즈)에게 던져진 지상과제다. 29일 다이에 전을 직접 지켜본 한국 롯데 이강돈 타격코치는 "승엽이가 국내 프로야구만 생각하고 방망이를 휘두르면 고생길을 자초하게 돼 있다"며 "하루빨리 한국을 잊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열쇠는 타이밍
29일 다이에의 사이토 가즈미와의 대결은 이승엽에게 또 하나의 숙제를 남겼다.
이승엽은 비록 첫 안타를 때려내기는 했지만 두 번째 타석 2구째까지 안쪽·바깥쪽에 관계없이 무려 5차례나 헛스윙을 했다. 면도날 같은 제구력과 낙차 큰 커브의 위력 못지 않게 2단계 키킹을 보여주는 사이토의 투구 동작에 타격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 국내 투수와는 달리 사이토처럼 변칙 투구동작을 보이는 일본 투수들이 적지 않다.
이승엽 스스로 "'공이 오겠지'하고 방망이를 돌리려고 하면 투수가 아직 마운드에서 한발을 들고 있어 타격리듬이 흐트러진다"고 털어놓았다. 김성근 전 LG감독은 "왼쪽 다리에 중심을 두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한편 마음속으로 박자를 세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몸쪽 공을 두려워 말라
우려했던 대로 두차례 경기에서 일본 투수들은 이승엽의 약점인 몸쪽 유인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원하는 곳에 마음먹은 대로 공을 찔러넣을 수 있는 제구력 면에서 일본 투수들은 한국 투수들보다 한 수위다. 피할 길이 없다면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 살 길이다. 롯데 양상문 감독은 "무의식적으로 약점인 몸쪽 공을 피하게 된다. 좀더 과감하게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가 원하는 공을 이끌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야쿠르트 강타자 출신 아오시마 켄타 TBS 해설위원은 "커트 능력을 길러 상대투수의 투구 선택 폭을 줄이면 원하는 코스의 공이 들어올 확률도 높아지고 장타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상하로 공 1개 정도가 길어지고 좌우는 좁아진 새로운 스트라이크 존도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 이승엽은 28일 요미우리전을 마치고 "볼 같은데 스트라이크고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했는데 볼이었다"며 스트라이크 존 적응에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능력과 근성에 기대
비록 출발은 미미하고 넘어야 할 산도 많지만 국내 팬들은 '아시아 홈런킹' 이승엽의 능력과 근성을 믿고 있다. 바비 밸런타인 롯데 감독도 "(다이에전) 스윙은 괜찮았다. 타이밍이 잘 안 맞았지만 타격감은 곧 회복할 것"이라며 이승엽에게 신뢰를 보냈다.
일본 언론의 반응도 일단 호의적이다. '닛칸스포츠'는 "사이토의 3구째 커브를 타격 폼이 무너지면서도 중전안타로 연결시켜 변화구에 대한 대응력을 보여준 만큼 이승엽에게 첫 안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승엽은 천천히 발동이 걸리는 전형적인 '슬로 스타터(Slow Starter)'다. 4일 마쓰야마에서 열리는 한신 타이거즈와의 세번째 경기에서 이승엽이 어떤 활약을 보일지 기대된다.
/후쿠오카=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