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미국 미네소타대학 교환교수 시절, 지도교수도 없이 독학하던 중 병원을 찾는 수많은 당뇨병 환자를 보고 한국에서도 당뇨병이 급증할 것이라고 생각해 귀국 후 당뇨병 진료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아흔을 바라보게 됐네요."당뇨병학계 태두인 김응진(金應振) 을지병원 의무원장 겸 당뇨병센터 소장이 3일로 88세를 맞는다. 이날 을지병원과 그의 제자들은 오후 5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미수연(米壽宴)을 겸한 논문집 헌정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1916년생인 김 박사는 39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46년부터 81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를 지냈다. 68년 대한당뇨병학회 창립을 주도한 그는 초대와 제2대 회장을 연임했으며, 81년 서울대 교수 퇴임 후 을지병원에서 24년째 일해 왔다. 그가 지금까지 진료한 당뇨병 환자는 10만명. 요즘도 주 4일, 하루 70∼8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2001년 한 노인학술단체로부터 '멋진 노인상'을 받기도 한 그는 노익장으로도 유명하다. 매일 새벽 5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김 박사는 입원 중인 당뇨병 환자들의 혈당 측정과 처방을 위해 오전 7시 전까지 반드시 병원에 도착, 검사기록을 검토한다. 아침식사는 빵과 우유로 가볍게 하지만 절대 거르지 않으며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 위해 밤 9시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김 박사가 꼽는 으뜸 건강비결은 꾸준한 운동. 그는 지난 40여년간 휴일마다 서울 안암동 테니스장을 찾아 산업은행 촉탁의 재직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게임을 하며, 월 2∼3회 골프장을 찾는다. "경성의전 재학 시절 축구와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하면서 체력을 단련했던 것이 미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바탕이 됐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도 4∼5층 정도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꼭 걸어 다닌다"고 말했다.
후학 양성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86년 저서 '당뇨병과 그 치료' 인세와 퇴직금 등으로 자신의 호를 딴 '설원(雪園) 연구비'를 만들었다. 연구비 없이 당뇨병 환자를 찾아 헤매던 시절을 생각해서다. 설원 연구비는 매년 당뇨병 연구 의학자 2∼3명에게 지원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18회 이상 지원됐다.
그는 한 대학과 공동으로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를 간에 이식하는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당뇨병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눈을 뜨고 봉사해온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남은 삶도 당뇨병 정복에 바칠 겁니다."
한편 김 박사의 아들 영건(56·충남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씨와 손녀 현진(28·충남대병원 레지던트)씨도 '3대 의료인'으로 당뇨병 치료에 나서고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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