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세계 주요뉴스로 다뤄지고 있는 아이티 사태는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29일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전격 탈출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권력에 대한 집요한 애착을 보였던 그가 망명의 길을 택함으로써 큰 고비는 넘었지만 아이티 정국이 당장 해결될 수 있을 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권력공백 상태를 어떻게 수습하고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국제사회가 얼마나 조기에 개입할 수 있느냐에 따라 아이티 사태는 명암이 갈릴 전망이다.아리스티드 대통령 출국 직후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폭력사태가 더욱 악화했으며, 대통령궁앞에서는 아리스티드의 지지자와 반정부 시위대 간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아이티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국민들이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부정과 실정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아리스티드 집권 하에서 개선되지 않는 경제·사회적 상황은 국민들을 실망시켜 왔고 아리스티드는 2000년 재선 후, 총선 부정선거 의혹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여기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8일 "아이티 사태의 책임은 아리스티드 대통령에게 있고 그의 통치 능력에 의심을 제기한다"며 우회적으로 사임 압력을 넣은 것이 망명에 이르게 한 결정타가 됐다.
세계 언론, 특히 서방 언론들이 경상도보다도 작은 빈국 아이티 사태를 매일 대서특필하는 배경에는 미국과 인접한 아이티의 지정학적 위치가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세기 초 내분을 구실로 아이티를 보호령으로 삼고 열대작물 재배에 대한 이권을 차지했다. 미국 자본은 현재까지도 이를 독점하며 아이티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또한 17, 18세기 프랑스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와 전체 인구의 5%이면서 아이티 전체 부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물라토(백인과 흑인의 혼혈)가 프랑스계라는 사실은 유럽 언론의 관심의 요인이다.
반군의 실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28일 뉴욕타임스는 루이 조델 샹블랭, 장 피에르 밥티스트와 같은 반군 지도자들이 아리스티드 집권 전 뒤발리에 가(家)의 잔악한 군부독재 정권 하에서 좌파 등에 대한 암살대로 활동했으며 91년 군부 쿠데타를 주도하며 학살을 행했던 이들이라고 전했다. 북부 지역 점령을 주도하고 있는 기 필립 역시 경찰간부 재임시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으며 2000년 쿠데타의 주요 공모자로 알려졌다. 쿠데타 실패 후 아리스티드에게 정치적 원한을 품고 해외로 도피하거나 감옥에 수감됐던 이들은 최근 정치적 불안을 틈타 아이티에서 다시 활약하며 아리스티드의 실정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에 편승, 현 사태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선뜻 아이티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좌파로서의 경력과 친 쿠바 정책 때문에 아리스티드를 달가워하지 않아온 미국은 그에게 직접 사임 압력을 넣을 수도 있지만 그를 대신할 정치적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반군 지도자들이 군부독재 정권과 깊숙이 연관됐었다는 어두운 과거도 미국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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