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요? 얘기두 꺼내지 마슈. 그거(행정수도) 오는 날이면 오송 사람들은 두 번 죽어유…." 신행정수도 예정지들이 투기지역으로 묶인 26일 오후, 충북 청원군 강외면 오송리의 한 농약판매점에서 만난 박재덕(66)씨는 행정수도 말이 나오자 "오송에 온다면 만사 제쳐두고 반대 투쟁에 앞장서겠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송생명과학단지에 집과 논, 밭이 수용돼 지난해 토지 보상을 받은 그는 단지 바깥쪽 마을로 터전을 옮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년이 넘도록 대체농지는 커녕 집터조차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평당 6만∼10만원씩 보상을 받았는데, 주변 땅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별 쓸모도 없는 수렁논마저 30만원을 웃돕니다. 그런데도 일부 토지주는 '기다리면 오른다'고 꼭꼭 움켜쥐고 내놓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잖아요." 박씨는 "땅값 폭등으로 부동산 업자와 투기꾼들은 배를 채웠지만 현지 농민들은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며 "이 모든 게 오송이 행정수도 유력 후보지로 떠올라 생긴 일 아니냐"고 목청을 높였다.'행정수도 결코 반갑지 않아요.'
박씨처럼 오송생명과학단지 조성으로 당장 이주를 해야하는 주민은 300여가구, 1,000여명.
오송 토박이 이관우(50)씨는 "시세보다 턱없이 낮은 과학단지 보상비 때문에 상당수 주민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을 잘 아는 오송 사람들이 또다시 대단위로 토지를 수용할 행정수도를 환영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강외면사무소 김창수(48) 총무담당은 "얼마 전 이장단이 모여 행정수도를 결사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건다고 하기에 '국가적 사업이니 이해해달라'고 간청해 겨우 진정된 상태"라며 "주민들이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은 찬성하지만 오송으로 오는 것은 명백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송이 대표적인 투기지역으로 비춰지고 있는 데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은 더욱 크다. "요즘 '오송 사람들이 땅값이 올라 부자가 됐다'는 말이 돈다는데 들어봤느냐"고 따지듯 말문을 연 유모(58·여)씨는 "현지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외지인과 부동산 업자들이 오송역 개발, 행정수도 이전 등을 이용해 투기를 부추겨 땅값을 올려놓고, 갖은 편법으로 불법 이득을 취하는 바람에 선량한 오송 사람들이 투기꾼으로 오해받고 있다"고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투기꾼 빠져나간 시장 '썰렁'
현지 부동산 시장은 예상과 달리 차분하다 못해 썰렁한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중심가에 늘어선 부동산 중개업소는 하나같이 개점휴업 상태.
이날 오전 내내 찾아오는 손님은커녕 문의 전화 하나 없었다는 B부동산의 한 직원은 "고속철도 오송역 건설 확정과 행정수도 특별법 통과가 이어진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요동을 치던 시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싸늘하게 식어버렸다"고 전했다.
K부동산 대표 이모씨는 "오송 땅값은 행정수도 후보지로 거론되기 시작한 1년여 전에 오를 만큼 올랐고, 이 때 속칭 '기획부동산'과 '떴다방'들이 다 해먹고 나갔다"며 "최근에 문을 연 부동산 업소들은 '막차'를 탄 기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송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충남 공주시 장기면. 또 다른 행정수도 유력 후보지의 하나인 이곳에서도 부동산 투기 열풍은 감지되지 않았다.
행정수도 이전의 호재에 편승, 치솟던 대지는 지난해 말부터 평당 40만원선에서 안정됐고, 농지는 최고 20만원까지 올랐다가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15만원선으로 뒷걸음질쳤다. 땅값이 안정되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부동산 중개업소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
주변지역은 여전히 들썩, 들썩
투기열풍이 가라앉은 분위기는 인구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6,000명 정도인 장기면 인구는 최근 두달 사이 겨우 10명이 증가하는데 그쳤다.
장기면 신정부동산 조희승(47) 사장은 "투기지역 지정 등 정부의 규제가 강화하고 있는데다 행정수도 이전지로 묶이면 개발이 제한될 것이라는 말이 돌면서 구매자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대단위 수용설로 행정수도 유력 후보지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반면 후보지 외 지역은 여전히 투기 광풍에 휩싸여 있다.
요즘 가장 뜨고 있는 곳은 오송과 장기 사이에 위치한 충남 연기군 남면과 금남면. 이곳에서는 "행정수도가 어디가 되든 혜택을 볼 것"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평당 15만원 하던 대지가 두 달 사이 40만원까지 치솟았다. 주민들이 가격 상승을 기대, 매물 회수에 들어가면서 거래는 뜸해졌지만 호가는 하루가 멀다하고 뛰어오르고 있다.
유력 후보지와 가까운 충북 청주시 서부지역과 청원군 옥산면, 부용면, 강내면 일대, 충남 천안시 북면, 병천면 등은 행정수도 이전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곳이다.
특히 오송, 장기와 접한 강내, 부용면 일대는 일년 전에 비해 지가가 3,4배씩 급등했지만 매물이 없는 상황이다.
청원군 관계자는 "유력 후보지가 정해진 적도 없고 신 행정수도의 규모가 워낙 커서 여러 지역에 걸쳐 조성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점으로 미뤄 현재 부동산 업계에서 떠도는 행정수도 관련 정보는 믿을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청원=한덕동기자 ddhan@hk.co.kr
공주=이준호기자 junhol@hk.co.kr
■ 경과와 향후 일정은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 작업이 지난 1월 16일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공포된 후 탄력을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임기개시 1년내 후보지 결정보다는 1년여가 늦어졌지만 올 하반기 후보지 선정을 향해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올해 가장 중요한 절차는 물론 충청권내에서 행정수도로 적합한 후보지를 고르는 일. 정부는 올 하반기 후보지에 대한 여론수렴 절차와 대통령 승인을 거쳐 입지를 확정, 발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까지 후보지로 가능한 충청권내 전지역에 대한 도상조사와 현지 방문조사를 모두 마쳤다.
입지 조사반은 그 동안 거론된 주요 지역외에도 충청권내 후보지로 가능한 모든 지역을 현지 방문해 표고와 경사도, 용수문제 등 82개 항목에 걸쳐 꼼꼼한 조사를 벌였다. 3∼5명으로 구성된 조사반은 현지 조사과정에서 땅투기 심리 자극을 우려해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극도의 조심을 했으며, 심지어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지형을 살피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도상,현지 조사와 입지기준에 따른 후보지간 비교평가는 6월말이면 끝난다. 하반기에는 후보지별 평가에 대해 전국 공청회 등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연말께 최종적으로 입지를 발표할 계획이다.
하반기 입지가 결정된 후 신행정수도는 어떤 형태로 건설될까.
구체적인 도시설계는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결정될 예정이지만 도시유형과 개발방향 등의 윤곽은 이미 정해진 상태다.
행정수도는 기존 도시와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독립된 형태의 신도시로 개발된다. 2,300만평규모에 인구는 2020년까지 30만명, 2030년까지는 50만명 수준으로 정해 단계적으로 개발된다.
쾌적한 환경과 친환경적인 도시를 만들기위해 주거용지의 인구밀도를 ㏊당 300명선으로 해 분당신도시(615명)의 절반이하로 낮췄다. 녹지면적도 도시면적의 48.4%를 확보토록 해 분당(28.4%), 일산(23.1%)보다 훨씬 쾌적한 도시를 조성키로 했다.
도시 공간은 중심지구에 정치·행정 기능과 상업, 업무기능이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고 획일적인 종합청사 형태 대신 부처별로 개성있는 정부청사를 지을 계획이다.
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 김필중 대전분소장은 "신행정수도 건설은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화를 위해 정부가 '올인'하는 사업"이라며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의 반대목소리가 있지만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허택회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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