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아일랜드 출신 현대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가 유년기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으로 떠나기까지 정신적 성장 과정을 다룬 자화상격인 소설이다.조이스의 눈에 비친 20세기 초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와 로마 가톨릭 종교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한 나라였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정신을 옭아매는 세 개의 그물을 '민족의식' '언어' '종교'라며 이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한다. 내용도 이 세 그물을 극복해내는 과정이 중심이다.
따라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번역할 때는 아일랜드 역사와 당시 식민지 아일랜드의 정치 상황, 자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문제, 그리고 아일랜드 국교인 가톨릭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신부가 되는 대신 예술가를 성직으로 삼았던 조이스가 가톨릭 종교어를 문학어로 변형해 사용한 점도 지나쳐버릴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조이스 작품 번역의 가장 큰 난관은 그의 자유로운 문체, 섬세한 언어 구사를 어떻게 우리말로 전환하는가 하는 점이다.
국내에서 출간된 역서의 종류는 총 13종. 이중 표절본으로 보이는 3권을 제외하면 실제 번역은 10종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번역은 국내 영문학 연구사와 거의 행보를 같이 하기 때문에 시대별로 달라지는 국어 용어나 표기법, 출판사의 조판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언어와 표기법을 현대식으로 바꿔 2002년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상옥 역서 개정판은 원전의 언어 뉘앙스, 리듬, 어조를 배려해 어휘 선택에 고심하며 섬세하게 한국어로 살려냈다. 아울러 각주에서 작품 이해에 필요한 지식뿐 아니라 어려운 문구를 자세히 설명했다. 김종건 역본은 작가의 문체와 수사법을 우리말로 바꾸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영문학계에 이름난 조이스 전문가의 역서여서 각주가 정확하고 상세하다. 유령 역본 또한 원문에 대한 꼼꼼한 연구가 바탕이 된 학구적인 번역이며 각주도 정교하다. 그러나 이 역서의 진가는 가톨릭 종교 용어와 교회 용어를 그에 상응하는 한국어로 빠짐없이 바꾼 데 있다.
나영균 번역의 특징은 여성적인 고아한 언어 구사이다. 서구 모더니즘에서 대단히 남성적인 작가로 인식돼온 조이스 작품을 곱고 단아한 언어로 표현해 편안한 느낌으로 조이스를 대할 수 있게 했다. 홍덕선 역서는 언어 구사가 가장 현대적이며 경쾌하고 발랄한 어조로 원문이 지닌 작품 분위기를 잘 연출해냈다. 각주도 상세하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번역은 반세기에 걸쳐 다져진 만큼 원전에 대한 정확한 의미 파악과 가독성에서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시로 급변하는 조이스의 다채로운 문체를 그에 상응하는 문체로 완벽하게 옮기지 못한 점은 모든 번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한계이다. 또한 미숙한 번역의 경우 직역 어투, 부자연하거나 원어에 상응하지 않는 부정확한 역어 사용, 작품과 원문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 주로 지적됐다.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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