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학자들이 28일 평양에서 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발족키로 합의함에 따라 남북 역사학 교류가 큰 물꼬를 트게 됐다. 특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역사학자들이 공동 합의체를 마련한 것은 의미가 크다. 남북의 공동 학술단체가 공식적으로 발족된 것은 사실상 이 협의회가 처음이다.남측의 역사학자 30여 명과 북측의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 등은 2월 25일 평양에서 '일제의 약탈문화재 반환'과 '일본해 표기의 부당성'을 주제로 공동학술토론회를 가진 후 협의회의 공식 출범을 놓고 수 일 간접촉을 계속한 결과 성과를 이루었다.
양측의 준비위원회는 2001년 2월 처음으로 '한일합방의 불법성'을 주제로 평양에서 공동학술토론회를 가진 이래 '일제의 강제징용' 'Korea와 Corea 표기 문제'에 이어 이번에 네번째 학술토론회를 갖는 등 그동안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 한국일보는 이번을 포함, 그동안 두 차례의 학술토론회를 남측준비위원회와 공동주최했다. 공동토론회는 앞으로 2월과 8월에 주로 평양에서 정기적으로 열리게 되며 서울에서의 개최 여부도 협의 중이다. 남측에서는 강만길 상지대 총장이, 북측에서는 허종호 조선역사학회 회장이 공동의장을 맡았다.
양측이 앞으로 공동연구와 토론회, 자료교환 및 전시회 등의 방식을 통해 교류할 분야가 관심사항이다. 양측은 합의서에서 '민족의 역사를 지키고 안정과 번영, 통일을 이룩해 가는 데 역사학자들이 책임을 다하기 위해'라고 명기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일제의 한반도 침탈과 역사왜곡이 주제였으나 민족적 측면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역사 왜곡인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의 상황추이에 따라 '동북공정' 에 대해 양측 학계가 공동대처를 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접촉에서는 '동북공정'이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동북공정'에 대한 북한 역사학자들의 반응은 아직까지는 대체로 "고구려사는 확고부동한 조선 역사가 분명한데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는가"이다. 북한의 한 학자는 사석에서 "고구려가 중국의 변방국가였다는 주장은 원래 일본이 거론했던 것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중국이 동북공정한다고 해서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 역사학계가 남측의 기대와 달리 '동북공정'에 대해 공개적인 언행을 조심하고 아끼는 것은 북중 관계의 미묘함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측 학계도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 북측이 남측의 역사학자들에게 특별히 평양 인근의 덕흥리 고분 벽화와 강서대묘의 유명한 '사신도' 벽화를 직접 보게 해 주고 동명왕릉을 안내한 것은 간접적 배려로 해석할 수 있다.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은 두 무덤의 벽화를 함께 둘러보며 고고학적 논쟁과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대해 비공식적 견해들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평양=한기봉기자 kib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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