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85주년을 맞는 감회가 착잡하다. 어렵사리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안의 본회의 상정이 보류됐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법안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6개월간 논쟁을 벌여 온 이 법안이 막바지에 이르도록 검토 중이라는 이유가 군색하다. 이 법안은 16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인 2일까지 상정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고 한다. 이 경우 책임과 부담은 한나라당에 돌아갈 것이다.친일규명법안은 의원 155명이 서명했고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같은 맥락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운동도 정부가 예산을 끊자, 시민이 11일만에 편찬목표액 5억원을 달성시킨 바 있다. 반세기 이상 매듭을 짓지 못한 친일청산의 어려움은 친일규명법의 입안·수정 과정에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조사대상에서 언론·예술·학교 등을 통한 친일행위가 제외됐다. 또 일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더라도 계급이 중좌(중령)에 이르지 못하거나, 일제에서 고문·학대 등을 했더라도 판·검사가 아니면 제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등 특정인 보호 의구심이 이는 까닭이다.
나치 침략을 받았던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은 나치 부역자와 기관 등을 엄격히 단죄하여 국가와 민족의 기강을 바로 세운 바 있다. 광복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는 초대 이승만 정부 때 친일인사를 반공인사로 재등용하면서 친일청산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법안의 표류 배경에는 득세한 친일파 후손 등 기득권 눈치보기와, 조상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의원이 많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우리가 유럽 국가들처럼 냉혹하게 부역자 처벌을 요구하기에는 입장과 조건이 다르다. 그렇지만 친일문제가 덫이 되어 끊임없이 국력이 소비되는 것은 어리석고 개탄할 일이다. 2일 국회 본회의에 법안이 상정되어 친일문제가 깨끗이 매듭지어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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