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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즐겁게 춤을 추다가 x

입력
2004.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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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지음 강 발행·9,500원

어느날 소설가 성석제(44)씨가 30년 지기 친구들로부터 "너 우리끼리 얘기할 때는 듣기만 하고 끼지는 마라"는 얘길 들었다. "네 얘기는 너무 재미가 없다. 네 이야기 듣느라고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억울하고 어이없어 "그럼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거야. 한두 해도 아니고 30년씩이나!"라고 외치는 데 아랑곳없이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금니를 악물고 있는데 자리를 마칠 때쯤 친구 하나가 말했다. "그런데 너는 말야. 말은 못하는데 글로 쓰면 가끔 재미있더라. 그래서 우리가 너를 봐준거야. 한두 해도 아니고 30년씩이나." 감격으로 눈물이 핑 돈 성석제씨, 계산대에 몸을 던져 술값을 냈단다.

성석제씨의 말은 영 재미가 없다는데 글을 읽으면 웃다가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하지만 글은 기막히게 웃기는데 그 감상을 풀어놓기 쉽지 않다. 그의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대개 "너무 재미있다"고 답할 것이다. 어디가 어떻게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그 사람들은 생각나는 걸 어찌어찌 얘기해보려다가 "직접 읽어봐"라고 답할 것이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는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길 위의 이야기' 등 성석제씨의 짧은 이야기를 묶은 두툼한 책이다. 어떤 것들은, 얼마나 재미있는가 하면 그의 소설보다 재미있다. 그리고 새로 나온 책과 함께 만난 그와의 대화는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전날에 고교 친구들과 만나 교가를 불렀다. 초등학교부터 중·고교 교가는 물론이고, 입학식과 졸업식 딱 두 번 부른다는 대학교가도 다 부른다. 그게 다 외진단 말이지. 음…훈련소가를 욀 땐 약간 힘들었다." 학교 얘기가 나오니 '수석졸업 사건'이 자연스레 따라 나온다. 코스모스 졸업을 앞두고 취직한 그에게 전화가 왔다. 단과대 수석졸업이니 꼭 졸업식에 참석하라는 교무처의 전갈이다. 그때 회사 선배도 "지나가던 개들이 단체로 웃을 소리"라고 했던 '수석졸업 사건'에 대한 성석제씨의 경위 설명은 이렇다. 군대 갔다 와선 3학년 1학기 내내 밥 먹고도 법, 술 취해서도 법, 시위한 뒤에도 법만 생각했단다(그는 법학과였다). 한 학기에 전공학점을 다 채우고는 문과대 강의를 들으면서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성적도 잘 땄단다. 그리고 졸업식에 갔는데 법과대 졸업생은 모두 다섯 명이었단다. "졸업식에 온 사람들은 모두 나의 수석을 믿을 수 없어했다. 아무리 졸업생 수가 다섯 명밖에 안된다고 해도, 그 다섯 명은 적은 숫자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졸업 자체를 의심하는 후배 녀석도 있었는데 그 녀석은 그 때문에 천벌을 받아 1년을 낙제하고 3년 뒤 후기졸업식에야 학사모를 썼다." 그는 눈물나게 분해 하면서 들려주는데, 그 얘기가 어찌나 눈물나게 웃기는지.

그는 소설을 쓰기 전 시인으로 등단해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첫 시집을 내자마자 다니던 직장에서 "우리 회사에 시인이 있었다니!"라며 단체로 200권을 주문했단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바로 재판 인쇄에 들어간 거야. 시집이 인기가 많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새로 찍은 시집은 '아주 천천히' 팔려나갔다나. 그때는 90년대였고 그는 30대였다. 2000년대가 되었고 40대가 된 성석제씨는 인생에 주문을 건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춤추는 인생을 가끔 멈추면서 그는 한 장면 한 장면을 글로 쓴다. 그렇게 쓰여진 산문이 모여, 너무나 유쾌하고 따뜻한 책 한 권이 됐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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