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천국을 도서관과 같은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바로 내가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 언어로 되어 있는 90만 권의 중심이었습니다." 1955년 국립도서관장으로 임명됐을 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고백이다. 점차 눈이 멀어 글자를 제대로 판독하는 것부터가 힘들었을 작가의 황홀함이 놀랍다. 77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문학강연에서 그는 "도서관장이라는 자리는 그 어떤 영광보다도 나를 흡족하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강의를 묶은 책 '칠일 밤'(현대문학 발행)에서 그의 목소리는 자랑스럽게 들린다. 그는 시력을 잃었음에도 "책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 대신 다른 세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 믿음이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를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을 것이다.책이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위대한 작가는 "내가 읽은 모든 책이 바로 나"라고 말했다. 책이 줄 수 있는 것을 물어보면 누구든 좋은 얘기를 할 수 있을 테고, 보르헤스의 얘기도 언뜻 보면 평이한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두번째 보면 문장을 이룬 문자의 묵직한 무게가 문득 느껴진다. 세번째 읽으면 밑줄 긋고 싶고 외워서 인용하고 싶다. 그 말들이 도서관 속 90만 권의 책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책의 힘이다.
창작 뮤지컬을 준비하는 황지우 시인에게 그동안 본 뮤지컬 중 어떤 작품이 인상적이었는가 물었다. 지난해 뉴욕을 방문해 브로드웨이를 순례하고 왔다는 그는 "모두 화려하고 재미있는 상품이었다"고 평한 뒤 "그렇지만 수년 전 본 '레미제라블'이 최고"라고 질문에 답했다. "잠깐의 흥분에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동을 더해간다"고 했다. 왜 그럴까 묻자 그것이 책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감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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