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꽃샘바람이 코끝에 매섭고 황사에 눈이 아파도, 가만히 귀대고 들어보면 그 사이로 봄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어 자라나는 새싹들이 배움과 삶의 터전인 학교로 돌아올 무렵, 우리는 거듭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안타깝고 슬픈 일에 시름겹다.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육 현실에서 크고 작은 말썽이며 동티가 끊이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이 이렇게 애꿎은 사람 목숨마저 빼앗는 흉한 꼴을 당하니, 가뜩이나 애면글면 살며 찌들대로 찌든 우리 마음은 더욱 스산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걸 모를 사람은 없다. 세상은 어지럽고, 교육은 헝클어졌으니 그 현장인 학교인들 제대로 일 리 없다. 험한 세월 살아왔답시고 유세하며 아직도 낯 뜨겁도록 강퍅한 가름과 나눔을 일삼는 어른들 본을 보고 아이들은 제들끼리 서로 따돌리고 못살게 군다. 사람대접이나 사람 생각은 아랑곳없이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잣대로 아이들을 다그치니, 가장 반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인 '집단 따돌림' 같은 못되고 못난 일이 학교에서 버젓이 일상이 돼버린 것이다.
그저 무슨 큰일이나 나야 떠들고 여느 때는 감추고 쉬쉬하다가, 그만 철없는 아이들이 제들에겐 또 다른 일상처럼 익숙한 동영상에 담아 세상에 널리 알려 버렸다. 이것을 보고 또 인터넷 강국입네 떠벌이며 기술과 도구는 저 앞서 내닫지만 그걸 사람답게 다루는 방식, 이를테면 익명성 속에서도 사람 아끼고 섬기는 채비를 미처 갖추지 못한 바람에 너도 나도 함부로 찧고 까불고…. 그러다가 그예 아까운 목숨마저 희생당하게끔 일이 커져 버리고….
따지고 보면 시나브로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교육현장에서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비굴하게 살아남은 우리들 숙제는 이를 어떻게 감당하고 해결하느냐다. 반짝 호들갑 떨고, 돌아가신 분께 예의나 차리고,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이나 꾸짖고 끝나서는 결코 안 된다. 교육문제처럼 심각한 것도 없거니와, 내 아이가 당하지 않으면 그저 혀나 끌끌 차다가 손가락질이나 하고 곧 나 몰라라 하는 본새로는 어째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제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백척간두에 선 위기를 뼈저리게 느끼고, 또 서로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을 고치고 바꿀 수 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데 교육은 저만큼 뒤처지고, 아이들은 그 교육에 한참 '올'자라고, 웃자라는데 그저 '바담풍' 하며 낡은 교육을 고집해 온 것을 뼈아프게 돌아보고 새로 비롯해야 한다.
아직도 우린 학교라면 그저 공부하는 곳이라고만 여긴다. 하지만 이제 공부 뿐 아니라 삶을 학교에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최근 사교육 절감방안이라고 학교에 아이들을 오랫동안 붙들어 놓는 고육지책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 시간을 삶, 특히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으로 써야 한다.
아울러 '뉴 미디어'의 시대, 어른들은 도저히 상상하기도 어렵게 발달한 기술과 매체에 이미 버릇, 기호까지 깊숙이 젖은 아이들과 함께 이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쓸 수 있는 오늘날 삶에 뿌리내린 공부를 해야 한다.
한 마디만 덧붙이자. 교육은 그 병이 뿌리 깊어서 당장 드러난 상처만 서둘러 손대고, 고치려 들다간 덧나고, 또 일을 그르치기 일쑤다. 바탕부터 되짚고 매만지는 끈기와 참을성, 그리고 함께 온 존재를 기울여 교육의 뿌리를 갈고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아쉽다. 목숨을 버려 문제를 새삼 깨우쳐 준 분을 기리며 봄은 와도 봄 같지 않다는 한탄이 아니라, 봄을 봄답게 만들어 자라나는 새싹들이 튼실하게 자랄 수 있도록 흙을 갈아엎는 일부터 팔 걷어 붙이고 나서야 한다.
정 유 성 서강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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