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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노사]<8> 브라질의 경제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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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노사]<8> 브라질의 경제살리기

입력
2004.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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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의 민주노총인 '유일노동자연맹(CUT·꾸찌)'소속의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노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지난해 1월 취임한지 1년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노조의 평가는 어떨까. 안토니오 까를로스 스피스 CUT 홍보국장은 "집권 이후 노동자를 위한 분배보다 경제성장에 치우치는 등 따질 점도 많지만 일단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에서는 이전 정권과 달리 희망적이다"라며 100점 만점에 80점의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나 룰라 정부에 대한 노조의 평가가 이처럼 후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집권 첫해인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노조와 정부는 무시로 충돌했다. 6월에 '무토지 농업노동자 운동(MST)'소속 농민들의 토지재분배 요구 시위가 전국을 휩쓸었고 7월엔 공무원 노조가 연금개혁을 반대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갈등의 이면에는 룰라 정부에 대한 실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노조위원장 출신답게 분배를 우선하는 친노(親勞)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했지만 룰라는 집권하자마자 금리인상 조치를 단행하며 긴축정책을 실시했다. 중앙은행 콜금리를 26.5%까지(2003년2월) 올리자 실질금리는 연100%가까이 치솟아 중소기업의 도산이 줄을 잇고 서민가계의 궁핍은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룰라 정부는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밀어 부치며 최고조의 갈등을 자초했다. 룰라는 240억 달러에 이르는 브라질 재정적자의 원인을 과도한 연금지출에서 찾았는데 실제 공무원들의 경우 노동자 평균 임금(200헤알, 약 8만원)의 50배가 넘는 1만헤알(약 400만원)을 연금으로 받아 챙기고 있었다. 이에 대해 룰라는 연금지급 연령 대폭 상향 연금수령 근무연한 10년에서 20년으로 연장 비과세인 연금소득에 11%의 세금부과 신규채용 공무원의 연금수령 상한액은 월 2,400헤알(약 100만원)으로 제한하는 등을 내용으로 한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장 공무원의 반대가 뒤따랐다. 특히 공무원노조는 강성노조 연맹인 CUT의 주요한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CUT도 개혁입법에 반대입장을 뚜렷이 했다. 그러나 룰라는 여기서 굴복하지 않고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연금개혁법을 밀어 부쳤다. 보수파와 일반서민 등 광범위한 계층의 지지를 업고 대화와 설득을 거듭하는 룰라의 강공(强功)에 노조는 결국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CUT도 지금은 "개혁법안의 세세한 부분은 지적할 게 많지만 큰 틀에는 이의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어 룰라가 썼던 긴축정책도 긍정적인 효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금리정책은 천정부지로 치솟던 인플레를 잡았고 점차 경제가 안정기조를 찾아가면서 대외 신뢰도 제고→해외 직접투자 증가→환율안정의 선순환이 나타난 것. 집권초기 26%이던 금리는 16%로, 환율은 달러당 3.5헤알에서 2.8헤알로 떨어져 경제성장을 위한 안정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가시화한 경기회복세로 올해엔 3.5%의 경제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개혁입법과 긴축정책을 둘러싸고 룰라 정부에 맞섰던 노조는 이제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게 됐다. "룰라 정부가 첫 7개월동안 혹독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실시하고 사회지출을 축소한 것은 노조출신 대통령의 정책으로서는 놀랄 일이지만 인플레를 잡고 취약한 경제의 바닥을 다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상파울루 대학 경제학과 엘리오 질베르스타인 교수)는 점을 노조가 인정하고 룰라의 성장 플랜에 동참키로 했기 때문이다.

분위기 반전에는 경제살리기가 우선이라는 룰라의 적극적인 설득과 대화도 한몫 했다. 룰라는 특히 노동자들의 파업을 '권리행사'로 인정해 줬다. CUT 스피스 홍보국장은 "과거 정권은 노조가 무슨 말을 하건 외면하고 탄압했지만 룰라는 일단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귀를 기울여 줬다"고 평가했다.

취임하자마자 실질적인 재분배 정책 '기아제로(Forme Zero)'프로그램을 시작한 것도 룰라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룰라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4,600만명이 하루 세끼 식사는 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복지예산 확충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그러나 룰라의 브라질은 산적한 과제를 안고있다. 10%내외의 고실업률과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에 따른 빈부격차의 격화 등등. 룰라는 경제성장으로 이 같은 문제들을 일소하겠다는 계획이다. 노조와의 대결에서는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사용자측은 아직 평가를 유보하고 있어 룰라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측은 룰라의 정책이 노조에 크게 경도되지 않았지만 기업에도 문호를 대폭 개방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상파울루=김정곤기자 kimjk@hk.co.kr

■브라질 노조 "국가조합주의"

브라질 노조는 국가조합주의(state coporatism)라는 독특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국가가 전체 노동자들로부터 매년 하루 분의 임금을 조합세로 징수해서 노조의 재정을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노조가 국가에 재정을 의존하는 형태다. 이는 1930년대 이탈리아 파시스트 노동체제를 본 따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만든 조치로 아직까지 근간이 바뀌지 않고있다.

노조는 단위지역과 주, 전국단위의 수직적 구조로 연결돼 있으며 지역간 수평조직은 인정되지 않는다. 지역별로 분리함으로써 노조의 단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최근에 와서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지만 노사간의 자유로운 협상마저 보장되지 않았다. 노사갈등은 바로 노동법원으로 이관돼 법적으로 해결하도록 강제되고 있다.

브라질 민주노총인 CUT는 이 같은 제도적 억압장치에 대해 반기를 들고 노조설립의 완전자유화와 복수노조 인정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공식구조에 안주하는 어용노조와 공산주의 계열 노조는 노동계급의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조합주의 체제를 찬성하고 있어 마찰을 빚고있다. 노조와 마찬가지로 단위지역에서 하나의 조직만 인정 받아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용자단체가 조합주의 철폐를 반대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전국단위의 최고조직으로는 CUT가 가장 큰 조직역량을 갖고 있으며 중도파인 '노동자의 힘(FS)'이 뒤를 잇고있다. CUT는 룰라의 대통령 당선과 개혁에 뒷받침을 해 주고 있는 반면 FS는 사사건건 룰라의 발목을 잡고있다. FS는 이전 까르도수 정권에 협조적이었다. FS의 위원장인 파울루 페레이라 다 실바가 올해 치러질 브라질 제1의 도시 상파울루 시장선거에 출마할 계획인 것도 룰라에게는 하나의 도전적 시련이다.

/김정곤기자

●까를로스 스피스 유일노동자연맹 홍보국장

룰라 대통령이 금속노조 위원장 자격으로 몸담았던 브라질 민주노총 '유일노동자연맹(CUT)'본부가 자리한 상파울루 브라스 지역은 우리로 치면 구로공단과 흡사했다. 낡은 건물과 공장들이 즐비한 골목 사이에 위치한 7층짜리 CUT본부를 찾은 지난 2일 때마침 내리친 천둥번개와 세찬 소나기로 건물은 한순간 암흑의 아수라장이 됐다. 그러나 안토니오 까를로스 스피스(사진) CUT 홍보국장은 "노조를 협상대상자로 인정하지도 않던 지난 정권 시절에도 살았는데 이 정도는 시련도 아니다"라며 희망을 이야기했다.

스피스 국장은 노조를 대하는 자세에서 룰라 정부는 이전정부와 다르다고 말했다. "까르도수 정권 때는 데모나 시위를 해도 대꾸도 않았지만 룰라는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귀를 기울인다"는 게 그의 평가다. 또 최근 금리가 하락하면서 경제가 안정화 단계로 들어선 데 대해서도 룰라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금리인하로 기업들의 투자가 확대되면 그만큼 고용시장도 넓어진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연금개혁입법에 대해서는 아직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과도한 연금을 받아가던 공무원들이 타격을 입는 것은 당연하지만 민간부문 노동자들도 덩달아 피해를 보게 됐다는 지적이다.

그는 룰라가 CUT출신이라는 이유로 CUT가 룰라를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우리는 연금개혁입법 과정에서 공무원들을 지지하며 거리시위를 벌였고 앞으로도 사안에 따라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는 그는 "정부가 노사문제를 일방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고 노조도 앉아서 정부가 해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올바른 노사관계는 노사간의 우호선린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정당한 권리를 찾아주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노조와 노조원의 권리가 침해 당하지 않도록 노사관계를 감시하고 이해를 조정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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