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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女선생님의 분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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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女선생님의 분 냄새

입력
2004.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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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0여년 전 일이다. 일제 때 초등학교 일본인 선생님은 학생들을 성실하게 지도했다. 특히 일본인 교사의 사모님은 지금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그 분은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 청소를 대신해 주거나 공부를 도와 주었다. 심지어 목욕까지 시켜 주었다. 학교에는 가마솥처럼 생긴 목간통이 있었는데 여기에 물을 가득 퍼붓고 아침부터 장작불을 지피면 수업이 끝날 때쯤 물이 데워져 있었다. 당시 가정이나 동네에는 목욕시설이 없었고 학교, 관공서, 일본인 관사에나 가마솥처럼 생긴 목욕시설이 있을 뿐이었다. 서민들은 집에서 물을 데워 가끔 씻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모님은 주말마다 목간통에 물을 데워서 학생 2명씩 통에 들어가게 한 뒤 비누칠을 하고 때를 벗겨 주었다. 내 차례가 되는 날이면 학교 가기 전부터 걱정이 되었다. 젊고 예쁜 사모님 앞에서 어떻게 옷을 벗는단 말인가. 피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젊은 여성 앞에서 목욕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가냘프고 고운 손으로 내 몸에 비누칠을 했다.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향수 냄새, 비누 향기, 그리고 글자 그대로 섬섬옥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당시의 기억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데 대해서는 분노를 느끼지만 일본인 개개인에 대해서는 나쁜 감정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분은 남의 나라 자식을 친자식처럼 친절히 보살펴 준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에 겪은 여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새롭다. 어느 날 운동장에서 친구와 씨름을 하다가 땅바닥에 얼굴이 스쳤다. 일어나 보니 코피가 흘렀다. 지금이라면 당장 양호실에 달려가겠지만 당시에는 헝겊으로 코 한번 문지르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리고 교실에 들어가려는데 마침 여선생님이 나를 발견하고 양호실로 데려갔다. 선생님은 하얗고 가냘픈 손으로 탈지면을 말아서 코피를 막아 주었다. 선생님한테서 풍기는 분 냄새를 맡고 나는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이제 두 분은 80대가 됐거나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이다. 나의 추억에 대해 "나이 들어 무슨 주책이냐"고 핀잔을 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이 지상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그리워진다. 인생이란 게 알고 보면 짧은 것이다. 하루하루 맞닥뜨리는 모든 것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소중하기만 하다.

/박동규·경기 포천시 영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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