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줄곧 내게 머물러 있다. 삶의 아주 작은 순간이 우리네 인생에서 얼마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는 지를 극히 잔잔하게, 짙은 페이소스로 웅변해주는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작은 걸작. 감동 그 자체인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의 놀라운 감성 연기에서부터 너무나도 섬세해 때론 호흡이 가빠지기도 하는 소피아 코폴라의 비범한 연출력에 이르기까지, 영화엔 좀처럼 흠잡기 힘든 미덕들을 넘실댄다.겨우 400만 달러에 빚어졌건만 무려 4,000만 달러에 달하는 ‘대박’을 터뜨리며, 올해 아카데미 레이스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에 후보에 지명되어 있는 이 블록버스터급 소품은 영화산업 종주국 미국의 영화판이 얼마나 건강하며 다양한가를 역설하는 소중한 사례다.
화제성에도 아랑곳없이, 국내 개봉에 2년의 세월을 받친 ‘8명의 여인들’은 반면 정반대의 노선을 걷는, 화려한 대작이다. ‘프랑스의 여인’ 카트린 드뇌브를 비롯해 ‘피아니스트’(미하엘 하네케)의 이자벨 위페르, ‘이웃집 여인’의 파니 아르당, ‘마농의 샘’의 엠마뉘엘 베아르, ‘스위밍 풀’ ‘우리의 릴리’의 샛별 뤼디빈 사니에르 등, 프랑스의 대표적 디바들이 대거 동원된 출연진에서 그 대작다움이 단연 빛난다.
‘프랑스의 쿠엔틴 타란티노’라 할 영화천재이자 악동인 프랑수아 오종은 스타들의 성찬을 통해 애거서 크리스티 풍 살인미스터리를, 그것도 뮤지컬 블랙코미디라는 주목할 만한 새 그릇으로 ‘판타스틱’하게 펼쳐보인다.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에 버금가는 재미와 흥분을 안겨주면서. 장담컨대 감독이 구사하는 예측불허의 상상력 및 특유의 도발성은 남다른 영화체험을 만끽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니 프랑스 영화는 으레 무겁고 지겨울 거라는 편견은 잠시 유보할 것.
한편, 올 베를린 경쟁부문에 진출한 화제작 ‘실종’은 야심에 비해 무난함으로 일관하는 범작이다. 무늬만은 역대 최고 서부극으로 평해지는 ‘수색자’(존 포드)나 ‘늑대와 춤을’(케빈 코스트너)을 닮으려 했으나, 그 근처에는 근접하지 못하고 변죽만 올리다 만 변종서부극. 감독 론 하워드는 전작 ‘뷰티풀 마인드’의 수준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여왕 ‘엘리자베스’의 개성파 케이트 블란쳇이나, ‘도망자’ ‘맨 인 블랙’의 연기파 토미 리 존스 등의 연기만은 퍽 볼만한 편이다. 그들이 맡은 강인한 어머니 상과 아버지 상도 그렇고.
그 말 많았던 ‘신설국’에 대해선 그저 이 말만 하련다. 홍보나 보도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다지 야하지 않다고. 수준을 논하긴 뭣하지만, 무작정 싸구려 성애영화도 아니라고. 그보다는 사랑의 힘을 역설하는 평범한 신파 멜로물이라고. 두 주연배우 유민(후에키 유코)과 오쿠다 에이지의 연기도 합격점을 줄만은 하고….
/전찬일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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