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개봉한 '질투는 나의 힘'에서 문성근은 어느 때보다 빛나는 원숙한 연기를 보여줬다. 세치의 혀로 세상의 진리를 왜곡하는 위선적 지식인을 그보다 더 탁월하게 연기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4대 신문 중 '배우 문성근'을 제대로 평가, 따로 인터뷰 기사를 실은 것은 한국일보가 유일했다. '조중동'은 약속한 듯 그를 외면했다. 그는 배우이고자 했으나, 이른바 보수신문은 '당신의 배우 짓은 정치적 속셈을 감추기 위한 탈에 불과하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배우 문성근에게는 억울한 일이었다.그리고 두달 후인 6월 그가 '인물 현대사'의 진행을 맡게 되었을 때, 논란이 크게 불거졌다. 공영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당파성'이 있다는 게 문제가 됐다. KBS 이사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으나, 담당 국에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인 문성근은 또 억울해 보였다.
당시 그는 "이제는 본업에 전념하겠다"는 말을 진심어린 말투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러므로 '노사모'였다는 이유만으로 한 직업인이 '먹고 사는 길'을 막는다는 것은 억지로 보였다.
그로부터 8개월 만에 문성근은 열린우리당 입당을 선언했다. TV에 얼굴을 조금이라도 팔면 아무나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말하는 상황에 그의 입당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그 사건은 여러 사람을 곤혹케 만들었다. 그는 '생활 정치인'을 표방한다지만, 생업현장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은 그의 구호는 공허해 보인다.
KBS에는 '정치관련 뉴스나 시사토론 프로의 진행자 등은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규정이 깨진 것을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며, 책임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 사람이 아니라 '방송인 문성근'을 믿어준 사람이 짊어져야 한다. 그는 6월 촬영 예정인 영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 말조차 이제는 영화의 인지도를 정치활동에 이용한다는 '매파'들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줄 뿐이다.
그럼 왜 그는 1년도 안된 사이 '말을 바꾼' 거짓말 정치꾼이 되어야 했을까. 그 때 그 말은 그의 진심이 아니었을까. 같은 시기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여균동 감독은 "왜 그런 진창, 뻘밭, 사람이 살 지 못할 곳에 가냐고" 만류하신 어머니의 말이 오히려 정치판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지를 부추겼다고 말했다. 지금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는 정치인들도 모두 "나라를 위해 소중한 인생을 희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하려는 자의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는 죄악이다.
똑 부러지는 방송인이었던 문성근에게서 나오는 입당의 변은 차라리 슬프다. "본업에 전념하겠다는 말이 '본업에만' 충실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급여 받고 일하는 것은 아니니, 직업 정치인과는 구별해달라"….
탈춤을 보며 양반 상놈 가리지 않고 막말을 해대는 말뚝이에게 박수를 쳐주는 것은 그 영혼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 말뚝이가 몸과 마음은 김씨 집에 두고, 이씨 집에 와서 신랄한 소리를 하면 욕만 먹는다. 영혼을 저당잡힌 딴따라에게 박수는 없다. 본인도 알겠지만, 이제 방송인 문성근은 없다. 더불어 정치적 편견 속에서도 그를 믿어 주었던 시청자의 신뢰도 함께 죽었다.
/박은주 문화부 차장대우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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