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같은 여잘 왜 좋아해요?" "솔직해서. 자존심도 없고. 너처럼 노골적으로 돈 좋아하는 애 처음 봤어. 다른 애들은 적어도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주거든."SBS '발리에서 생긴 일'(토·일 밤 9시45분)의 여주인공 수정(하지원)은 정말 별 볼일 없는 여자다. 돈도 없고,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순수한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재벌2세 재민(조인성)에게 돈만 주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하고, 그가 사준 아파트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녀는 재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전도유망한 대기업 사원인 인욱(소지섭)의 사랑을 받는다. 대체 어째서, 남자들은 이 인생의 나락에 떨어진 여자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것은 '발리…'가 말하는 사랑이 우리가 사랑이라 믿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천국의 계단' 같은 트렌디 드라마들은 사랑이 절대적인 운명이자 착한 사람들끼리맺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발리…'의 사랑은 서로의 마음을 가지고 벌이는 일종의 '게임'이다. 중요한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괜찮은 사람인가가 아니라, 내가 그를 얼마나 '소유'하고 싶어하는가, 그것을 통해 자신을 얼마나 과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재민은 돈만 주면 수정을 자기 곁에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만족하지만, 그래봤자 수정의 '마음'은 얻을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그녀에게 더욱 집착한다. 인욱 역시 수정이 자신보다 더 가난한 집에서 자라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여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수정에게 점점 더 매달리게 되는 것은 그녀가 재민에게 갈지 모른다는 것 때문이다. 어쩌면 재민과 인욱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수정이 아니라, 수정의 마음을 얻은 뒤 상대방을 비웃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랑이란 소유욕과 질투, 자존심이 섞인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감정들의 집합이다. 그래서 이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수정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더욱 수정을 가지려 하고, 그러면서도 결국엔 자신만을 위한다. 재민은 수정을 사랑하면서도 결혼은 못한다고 말한다. 영주(박예진) 역시 인욱을 사랑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에게 달려가는 대신, 그에게 자신의 '애인'이 되어줄 것을 요구한다. '발리…'는 선악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모두가 이기적이고, 모두가 사랑으로 포장된 소유욕과 질투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소유할 수 없기에 상대방을 더욱 사랑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발리…'의 매력은 계속 꼬여가는 스토리가 아니라, 서로의 감정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에서 나온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그만큼 더 처절하게 서로를 원한다. 그런 감정의 처절함과 서로에 대한 욕망이 빚어내는 폭발적인 힘은 늘 '순수한 사랑'만을 외쳐온 기존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발리…'는 트렌디 드라마들이 늘 구호처럼 외쳐온, 그러나 늘 결론은 진부한 사랑의 찬가로 마무리되곤 했던 '젊은이들의 사랑과 욕망과 좌절'을 제대로 보여주는 꽤 근사한 연애 심리극이다. 사랑은 정말 이타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걸까. 그 솔직한 해답이 여기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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