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신기술 업체들이 자국 정부를 내세워 한국 시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우리 업계가 추진중인 독자적 기술 표준화 노력이 장기적으로 미국 기업의 로열티 수입을 깎아 먹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미 기술 종속을 우려하는 우리 정부와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미국 정부간에 통상 마찰이 예고되고 있다.25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날 열린 한· 미 통상회의에서 미국측 대표 데이비드 그로스 국무부 대사는 국내 이동통신 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위피'(WIPI) 표준화 작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전달했다. 위피는 휴대폰에서 게임과 웹브라우저 등이 실행되도록 도와주는 기본 소프트웨어다.
미국은 위피가 단일 표준으로 인정될 경우 자국 기업인 퀄컴의 '브루'(Brew)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져 휴대폰 1대당 3달러에 이르는 자국의 기술 사용료(로열티) 수익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또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휴대인터넷 기술 표준화 작업에도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어 차세대 무선인터넷 기술로 각광 받는 휴대인터넷은 플라리온와 어레이콤 등 미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가운데 국내 업체들의 모임인 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최근 독자 기술인 'HPi'를 서비스 표준으로 제안했다.
우리 정부와 업계는 미국측의 요구에 대해 다양한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다. 위피의 경우 내부적으로 브루를 쓸 수 있도록 기술 개선이 가능한데도 무조건 복수 기술 표준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강요로 해석된다. 또 휴대인터넷 사업자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 표준 장벽을 운운하는 것도 너무 이르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 업체의 로열티 인하 요구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위피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퀄컴과 미국 정부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휴대폰 업계 관계자는 "퀄컴과의 불합리한 로열티 계약 때문에 날이 갈수록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퀄컴은 1993년 우리나라에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통신 기술을 수출해 로열티 수익만 2조원 이상을 챙겼다. 하지만 경쟁국인 중국 업체에는 로열티를 깎아주면서도 국내 업체와는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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