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똥 냄새가 나아요." 비데 점검을 온 서비스센터 직원이 습관처럼 변기 방향제통에 파란색 청정액을 가득 넣고 가자 은민(6·여)이 엄마는 곧바로 쏟아내 버린다. "알고 보니 향기 속에 독이 숨어있었어요." 방향제 성분의 50%를 차지하는 에탄올은 장시간 흡입하면 두통과 어지러움, 무기력증을 유발하며, 냄새 나는 물질을 산화시키는 탄화수소화합물(이소프로판)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과호흡증후군을 일으키고 체내에도 축적되기 때문이다. "방향제 광고를 보면 집안 가득 방향제를 놓아 두고 심지어 아이들이 안고 자는 곰 인형에도 방향제를 뿌릴 것을 권하고 있지만 성분 표시도 제대로 돼 있지 않고 유독성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방향제 대신 은민이네 욕실 선반 위에는 까만 숯 덩어리와 노란 모과가 예쁘게 놓여 있다.서울 도봉구 창동에 사는 은민이 엄마 김미란(34)씨는 요즘 집안의 화학물질과 전쟁 중이다. 김씨는 가족들의 건강과 아이들의 미래 환경을 위해 가장 먼저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에서 세제류를 없앴다. 그릇과 과일을 깨끗하게 씻어준다는 온갖 종류의 세제 대신 김씨는 쌀을 씻을 때 나오는 하얀 쌀뜨물을 사용한다.
저녁 7시 방문한 김씨 아파트의 부엌쪽 베란다에 있는 설거지용 함지박 속에는 하얀 쌀뜨물이 절반쯤 남아있었다. "아침 밥 지을 때 사용한 쌀뜨물을 남겨 놓았다가 아이들 저녁 식사 후에도 사용해요." 수세미를 쌀뜨물에 적셔서 그릇을 닦은 후 헹구면 음식 찌꺼기들이 말끔히 제거될 뿐만 아니라 기름때 묻은 그릇도 깨끗하게 닦인다. 쌀뜨물에 함유된 미백물질이 세정효과를 높인다는 점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처음엔 '쌀뜨물이 설마…' 했지만 실제 사용하고 보니 의외로 세정효과가 뛰어났어요." 김씨는 "무엇보다 마음이 개운하다"고 했다. 싱크대 가득 부풀어오르던 주방 거품이 사라진 것은 물론 혹시 그릇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세제성분을 걱정하며 몇번씩 헹궈야 했던 불안과 불편에서도 말끔히 벗어났다. "백화점에서 파는 세정제로만 그릇을 닦아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이었어요." 쌀뜨물 설거지를 한 이후 물 사용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설거지후 쌀뜨물은 화분에 뿌린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김씨도 다른 주부들처럼 '청결'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온갖 세제류를 사용하고 화학물질로 도배된 집안에서 살았다. 큰 아들 홍민(8)이가 5살이었을 무렵, 새 집으로 이사가면서 새 가구와 새 장판, 새 벽지, 새 소파 등이 뿜어내는 온갖 화학물질 속에서 당시 3살이던 딸 주요(7)와 2살이던 은민이는 바닥을 뒹굴었다. 변기·욕실·배수구 세척에 온갖 고성능 세제류를 뿌려댔고 거실과 안방에는 뿌리는 모기약과 바퀴벌레약, 섬유 탈취제, 습기제거제가 아이들 손 닿는 곳곳에 놓여있었다. 세탁기에는 세제뿐만 아니라 섬유유연제와 표백제까지 넣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 안에서 사용하는 유해 화학제품만 40여가지를 넘었다.
"화학물질의 독성을 모르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아무거나 사용하고, 아무 음식이나 먹였던 게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김씨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각종 화학물질이 어른과 아이들 몸 속에 하나하나 쌓여 미래를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환경단체가 운영하는 '다음을 지키는 엄마모임'에 가입하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이 모임에서 토론된 국내외 연구자료들은 김씨의 생활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소가 2001년에 내놓은 '내분비계 장애물질 연구보고서'에선 시중에 유통중인 주방세제 9개 제품에서 환경호르몬 물질인 알킬페놀류가 최고 352.8ppm까지 나왔다. 알킬페놀류는 합성수지류의 산화방지제나 주방용 세제류의 계면활성제로 사용돼오다 동물 실험에서 정자수 감소와 성기 왜소화 현상이 나타나 세계적으로 규제되고 있다.
국립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조사결과에서는 가정용 살충제나 의복·침대용 탈취제, 방향제 등에 사용되는 바이오사이드(biocide·항균제)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이 물질은 신체접촉시 피부발진이나 호흡기 장애 등 각종 위해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품도 안심할 수 없다. 시민환경연구소 조사 결과 국내에서 판매되는 향수 헤어스프레이 무스 모발용품 매니큐어 등 5종의 화장품에서는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이자 유력한 발암물질인 프탈레이트가 검출됐다. 프탈레이트는 중금속인 카드뮴과 같은 수준의 독성화학물질로 2002년 11월 스웨덴의 조사에서 일부 화장품에 들어있는 사실이 밝혀져 유럽연합(EU) 등이 규제를 서두르고 있다.
합성세제와 샴푸, 린스 등에 포함된 계면활성제는 신경조직을 약화시키고, 고성능 세척제에 들어있는 제올라이트와 형광표백제는 발암 성분이다.
"지나친 청결은 오히려 건강에 해롭더라구요." 이제 김씨는 이웃에 집들이 갈 때도 세제류를 절대 사가지 않는다. 대신 화학물질을 잘 빨아들이는 관엽식물 화분을 선물한다. 아이들 옷을 살 때도 세제를 덜 사용해도 되는 천연섬유 소재를 고른다. 섬유유연제를 넣지 않고 세탁한 은민이네 수건을 사용해본 손님들은 뻣뻣한 표면에 "얼굴 긁히겠다"며 놀리기도 한다. 모기약을 없애면서 아이들은 여름엔 모기장을 치고 잔다. 머리 감을 때도 샴푸 대신 천연비누만 사용하고 아침 세수 때는 아예 비누를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닦는다. 은민이네 욕실 사물함은 텅텅 비어있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벌레먹은 사과의 제안 이렇게 삽시다
전세계적으로 10만여종의 화학물질이 유통되고, 매년 2,000여종의 화학제품이 새로 나온다. 화학제품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지만 인체에 들어와 내분기계장애를 초래하고 생식기능을 감소시키는 등 점차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재앙이 되고 있다.
작은 실천이지만 세탁과 목욕 때 조금이라도 화학제품을 덜 써보자. 머리를 감을 때는 샴푸 대신 비누를 쓰고, 린스 대신 동백기름이나 식초를 한 두 방울 물에 넣어서 헹구면 말끔해진다. 빨래를 헹굴 때도 섬유 유연제를 사용하지 말고 식초를 이용하면 좋다. 음식물 찌꺼기, 머리카락 등으로 하수구가 막혔을 때는 강력 세제를 쓰지 말고 베이비파우더와 뜨거운 물을 부으면 잘 뚫린다. 설거지할 때는 쌀뜨물 외에 시금치 등 채소 데친 물도 훌륭한 세제가 된다.
세탁시에는 가능한 한 간단한 세제만 사용하고 이것저것 기능성세제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세탁 후에도 바람과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말리면 남아있는 화학물질을 제거하는 데 좋다. 드라이클리닝한 옷에는 클리닝 용제에 들어있는 벤젠 나프탈렌 등 화학물질이 남아있어 백혈병과 기억력 약화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비닐 커버를 벗겨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둔 다음 옷장에 넣는 것이 좋다.
/서울환경연합 '벌레먹은 사과팀' www.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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