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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알로에 인생 김정문<24> 알로에 재배 최적지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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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알로에 인생 김정문<24> 알로에 재배 최적지 제주

입력
2004.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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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 울적할 때면 제주를 찾는다. 내게 제주는 우리나라 알로에 사업의 흥망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의미 깊은 고장이다. 알로에 사업이 줄줄이 도산하던 1983년 봄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다.제주는 우리나라에서 알로에 재배의 최적지다. 날씨가 따뜻해 사막의 열대 작물인 알로에와 궁합이 잘 맞는다. 당연히 알로에 붐이 일면서 재배 농민들이 우후죽순처럼 불어 났다. 그런데 판로가 막히자 알로에는 버려진 채 여기저기 천덕꾸러기처럼 뒹굴었다. 찢겨진 비닐하우스는 볼썽사나운 흉물이 됐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내 농장이 아닌데도 기가 막혔다.

사업을 재개한 지 5개월 정도 지난 84년 이른 봄 나는 다시 제주를 찾았다. 그야말로 맨 몸에 맨 주먹인 신세였다. 그 때 정씨라는 꽃 장수를 만났다. 그는 내가 꽃 농사를 20년 넘게 지은 사실을 알고 있다며 친근하게 대했다.

제주 토박이인 그는 내게 제주와 알로에에 대해 샅샅이 알려줬다. 당시 알로에 재배 농민들은 대부분 파산 상태였다. 나도 모든 농장을 처분했던 터라 어디서든 알로에를 구해야 할 처지였다. 우리는 서로 공생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알로에는 헐값에 사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야박하게 굴진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나 김정문을 믿고 알로에 사업에 뛰어 든 사람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오리'라고 떠든 적은 없지만 내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값을 비교적 넉넉하게 쳐 줬다.

당시엔 아보레센스를 사서 생잎은 서울로 보냈다. 그리고 강연회가 끝나면 위장병 등에 시달리는 청중에게 즉석에서 팔았다. 또 잎의 일부는 식품회사에 외주가공을 맡겨 건조분말을 만들게 했다.

이런 이유로 1년에 제주와 서울을 수 십번 오가는 생활이 반복됐다. 조그만 여행가방을 메고 제주 방방 곳곳을 찾아 다녔다. 숙식은 허름한 여관방에서 해결했다. 언젠가 제주 땅에 내 농장을 짓고야 말겠다는 각오도 다잡았다.

그러기를 3년이 지난 87년 봄 내 농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에서 5년 계약으로 1만평을 빌렸다. 가을에 비닐하우스를 지을 수 있도록 알로에 묘종을 심었다. 찬바람이 불기도 전에 비닐을 씌우고 얇은 카시미론 이불을 덮고, 그 위에 비닐을 덧씌우고 나니 12월이 됐다. 피 말리는 작업이었다. 알로에는 제주에서도 한 여름을 빼고는 주로 비닐 하우스에서 온실 재배한다.

사업은 번창했지만 어느덧 지주와 계약한 5년이 다가왔다. 그리고 또 다른 역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주는 돈을 더 주겠다는 나의 제의를 거부한 채 모든 시설을 뜯어서 나가라고 호령했다. 이유를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계약 연장을 포기했다. 자기 땅 없이 농사짓는 '농부'의 비애가 뼈에 사무쳤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대규모의 철골하우스 시설과 알로에 수만 그루를 옮겼다. 1억원 가까운 생돈이 날라갔다. 가슴이 쓰린 것도 그렇지만 부담이 너무 컸다.

나는 표선 민속촌 근방에 8,000평 가까운 농지를 사 지금의 제주농장으로 가꿔 나갔다. 92년 여름 무렵이다. 지금은 제주농장에 전세계 알로에 500여 품종 중 450종, 6만 그루가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다. 매정했던 지주가 오히려 은인이 된 셈이다. 여의도 보다 훨씬 넓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농장에서도 450품종, 6만 그루가 자라는 곳은 찾기 힘들다. 그만큼 자부심도 크다.

세상 만사에 지쳤을 땐 제주농장을 찾아 2층 사무실에서 들판을 바라보며 시름을 잊곤 한다. 환갑 나이에 남의 땅을 빌려 알로에 농사를 짓고 5년 뒤에는 기어이 내 땅에 농장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과연 뭘 믿고 무슨 용기로 이 농장을 만들었을까. 회상에 잠기다 보면 일종의 자기도취에 빠지곤 한다. 울적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내 마음에 새로운 정열이 솟구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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